[로팩트 신종철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소수의견 개진이 수축된 보수ㆍ획일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11일 “최근 12년간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211건 전체를 분석한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에 비해 양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질적으로는 퇴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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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2005년 9월부터 2011년 9월까지 제14대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제15대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박범계 의원실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전원합의체 판결 건수는 총 115건으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원합의체 판결 96건보다 19건 가량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별개ㆍ보충 의견이나 반대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판결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전체사건 대비 35.4%(34건)의 비율을 보였으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33.4%(38건)으로 2.0%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소수의견인 ‘별개’, ‘보충’ 의견 개수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원합의체 판결 96건 가운데, 만장일치 판결 34건을 제외한 62건의 사건에서 별개ㆍ보충 또는 반대 의견은 154개가 기록돼 추가의견 개진 판결 1건당 평균 2.48개의 추가의견이 개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전체 전원합의체 판결 115건 중 만장일치 38건을 제외하고 77건의 사건에서 의견 개진이 이뤄졌는데, 그 중 추가 의견이 162개에 불과해 평균 의견 개진 수가 2.1개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에 비해 의견개진이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최대 추가의견 개진 개수는 6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최대 추가의견 개진 개수는 5개였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은 “추가의견개진 판결 중 4개 이상 추가의견 개진 판결 비율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의 경우 22.8%(14건)인데 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12.9%(10건)에 불과해 좀처럼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반대의견’, 다수의견에는 동의하더라도 논거를 달리하는 ‘별개의견’, 다수ㆍ반대의견의 논거에는 동의하지만 추가의견을 제시하는 ‘보충 의견’을 기록할 수 있다.
박범계 의원은 “즉 난상토론이 오가기로 유명했던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와 비교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심리과정에서 논의되거나 판결문에 기록되는 별개ㆍ보충 의견이 줄면서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소수의견 개진이 수축된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이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기보다 정권의 입맛 맞추기식의 획일화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원합의체는 사회적 논쟁이 뜨거웠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2012년 대선개입 사건이나 키코(KIKO) 사건 또한 어떠한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 없이 만장일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2년 대선개입 의혹을 받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1심에서 정치개입은 인정했으나 대선개입은 부정하는 판결을 내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박범계 의원은 “반면 2심에서는 대선 개입을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해, 대법원 판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사건이었음에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은 어떠한 소수의견도 없이 만장일치로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원심을 파기환송 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키코(KIKO) 사건의 경우, 1심에서 208개 중소기업 중 165곳이 패소했고, 43개 기업은 승소했지만 은행 책임 비율이 50% 이하에 머물렀다. 일부 재판부에서 은행 책임을 70%까지 인정하기도 했지만 판결이 엇갈린 바 있다”며 “그러나 대법원은 키코(KIKO)사건 또한 전원합의체 판결에 회부해 소수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은행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 당시 제사주재자를 정할 때 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되지 않으면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이,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맡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판례를 변경하며 전원합의체 판단을 했는데 이 때 반대의견 3개, 보충의견 역시 3개가 개진되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활발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북공동성명실천연대 사건 판결에서도 반대의견 3개, 보충의견 2개가 개진된 끝에 남북공동성명실천연대를 이적단체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사건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범계 의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활발한 토론과 소수의견 개진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양승태 체제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적 관심이 주목된 사안에 대해서도 어떠한 보충ㆍ별개, 반대 의견 없이 획일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이는 대법관의 인적구성이 법관 중심과 정권 색깔에 맞는 사람들로 편중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촉구했다.
박 의원은 마지막으로 “새로이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시작된 만큼 하나의 사건에도 반대ㆍ보충ㆍ별개 의견이 활발히 개진돼, 우리 대법원이 사회 각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