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1일자로 퇴임한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의 후임으로 ‘엄상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신숙희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했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6명의 대법관 후보자 중, 법과 원칙에 충실한 재판으로 공정하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충실히 보장할 수 있는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능력은 물론이고, 사법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 의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통찰력과 포용력,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과 훌륭한 인품 등을 두루 겸비했다고 판단한 두 후보자를 각 임명제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5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이광형 KAIST 총장)는 최초 천거된 대법관 후보 74명 중 심사동의자 42명에 대한 대법관 적격 여부를 심사해, 박순영(’66년생) 서울고법 판사, 박영재(’69년생) 법원행정처차장, 이숙연(’68년생) 특허법원 고법판사, 조한창(’65년생) 법무법인 도울 변호사와 두 후보자를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제청 후보로 추천했다.
엄상필(嚴相弼) 대법관 후보자는 196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 동명고와 서울대 법과대학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제23기로 수료했다. 1997년 2월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해 서울가정법원·춘천지법강릉지원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판사, 창원지법진주지원·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법창원재판부·수원고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하고 2021년 2월부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해 왔다.
대법원은 “엄상필 후보자는 1997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래 약 26년 동안 서울‧강릉‧진주‧창원‧수원 등 전국 각지의 여러 법원에서 민사, 형사, 가사 등 다양한 재판업무를 담당한 정통 법관”이라면서, “치밀한 법적 논증과 사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구체적 사건 해결에 가장 적합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고, 사전에 기록을 철저히 검토하고 쟁점을 충실이 파악해 법정을 주도하면서도 부드럽고 정중한 법정언행으 로 소송진행이 원만하며, 판결문이 간결하면서도 표현이 정확해 당사자 및 소송관계인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요 판결로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북한이 대남선동 목적으로 발표한 담화를 전파해 선동활동을 한 혐의, 통일 토크콘서트를 개최해 북한 체제를 미화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 사건(서울중앙지법 2015고합113)의 재판장으로서, 토크콘서트 주최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자유로운 의사표현 및 토론 절차를 통해 충분히 검증·반박·비판될 수 있는 것들로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의 해석 및 적용에 관한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고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취지를 선언했고, 이 사건에서 전기통신업체에 압수수색영장 사본을 모사전송하는 방식으로 영장을 집행해 취득한 이메일 자료의 증거능력을 부정함으로써 압수수색영장 집행방식의 적법성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재직 시에는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창업자인 송치형 의장이 가짜 계정을 만들고 거액의 자산을 예치한 것처럼 전산을 조작해 1천억 원대의 이익을 챙겼다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0노367)에서, 수사기관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 등의 절차를 집행할 때에는 피압수자 또는 변호인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고 혐의사실과 무관한 정보의 임의적 복제 등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등 영장주의 원칙과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그러한 절차를 통해 확보한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하면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적법절차의 원칙을 강조했다.
반면,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비리 관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경심 교수 사건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1노14) 재판장으로서는, 사모펀드 비리 관련 혐의는 1심과 달리 일부 무죄로 판단했으나, 증거은닉교사 혐의는 1심을 뒤집고 유죄로 인정하고, 자녀 입시비리 관련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피고인의 행위는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질서를 해치며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는 등의 중대한 범죄임을 강조하면서 징역 4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국정원 예산으로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한 혐의,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위 풍문을 확인한 혐의와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 2억 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前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서울고등법원 2021노488)에서는 재판장으로, 환송 전 2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직권남용 혐의,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추가로 유죄로 인정하면서, 보다 가중된 형량을 선고함으로써 피고인들의 범죄가 반헌법적이고 국민의 신뢰를 크게 배반하는 심각한 행위임을 일깨웠다.
엄상필 대법관 후보자는 경남지방변호사회 법관평가에서 2018년, 2019년 2년 연속 우수법관으로 선정됐고, 서울지방변호사회 법관평가에서도 2021년 우수법관으로 선정됐다.
엄 후보자의 재산은 서초동 24평 아파트를 포함해 14억7천만여 원이고, 병역의무는 본인은 법무관 육군대위로, 장남은 공군병장, 차남은 육군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신숙희(申叔憙) 대법관 후보자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창문여고와 서울대 법과대학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제25기로 수료했다. 1996년 3월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해 서울가정법원·대전지법·서울지법동부지원·서울중앙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제주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부산고법창원재판부·수원고법 고등법원 판사 등을 역임했다. 2023년 2월부터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해 왔다.
대법원은 “신숙희 후보자는 1996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래 약 27년 동안 서울‧대전‧제주‧창원‧수원 등 전국 각지의 여러 법원에서 민사, 형사, 행정 등 다양한 재판업무를 담당한 정통 여성 법관”이라면서, “한국젠더법학회 부회장, 법원 내 젠더법 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성평등, 성인지 교육의 확대, 일과 삶의 양립을 위한 제도의 도입 및 정착에 기여한 젠더법 분야의 전문가이고, 아동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연구와 교육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2023년 여성 최초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돼 양형기준 대상 범죄군의 확대, 양형인자에 관한 연구용역 실시, 양형연구회 심포지엄 개최, 양형기준 용어에 대한 검토 등 형사재판에서 불합리한 양형편차를 해소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합리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인공지능 도입을 통한 양형 관련 업무시스템의 고도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요 판결로는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시, 6‧25 전쟁 직후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인 ‘제주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첫 손해배상청구소송(제주지방법원 2010가합3014)에서 재판장으로, 위법행위를 한 국가가 그 위법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와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임무가 있는 국가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어방식이라는 이유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하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했다.
서울고법 고등법원 판사 재직 시에는, 주류 총판 대리점을 운영하던 남편의 채무를 보증한 아내에게 주류회사가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한 사건(서울고등법원 2018나2033075)의 재판장으로, 아내가 남편의 채무를 보증했더라도 대리점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거나 대리점 경영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보증채무를 부담하는 경우가 아닌 때에는 다른 보증인과 마찬가지로 보증인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보증인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채권자인 주류회사의 아내에 대한 청구를 기각함으로써 독립된 경제적 활동을 하는 배우자를 보호하고자 2008년 제정된 보증인보호법을 최초로 배우자에게 적용한 판결을 했다.
수원고등법원 고법 판사 재직 시에는, 가상자산 투자로 고율의 수익과 회원유치 소개비를 준다고 투자자 약 5만 명을 기망해 약 2조 2,500억 원을 편취한 ‘브이글로벌 사기’ 사건의 항소심(수원고등법원 2022노257)에서 재판장으로, 충실한 양형심리를 거친 다음 브이글로벌 대표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5년을 선고하면서, 가상화폐를 통해 피해금을 지급하겠다는 등으로 궁박한 피해자들을 회유해 받은 처벌불원서는 양형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대법원은 “신 후보자가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변론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면서 매끄럽게 재판을 진행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구체적 타당성을 갖춘 결론을 도출하며 쟁점에 대하여는 쉽고 간결한 표현으로 풍부한 판단근거를 제시해 당사자가 쉽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해 당사자 및 소송관계인으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다.”면서, “서울지방변호사회의 2018년 법관평가에서 우수법관에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신 후보자의 재산은 서초구 34평형 아파트를 포함해 41억8천만여 원이고, 병역의무는 배우자는 질병 면제, 아들은 공군으로 만기전역했다.
대법관은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라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