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9년간 우울병을 앓아 오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의 유족에게 보험사가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안철상 대법관, 주심 이흥구 대법관, 노정희·오석준 대법관)는 우울증을 앓다 사망한 20대 정모씨의 부모가 한화손해보험(주)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항소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대법원 2022다238800)
2010년 14세 때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정모씨는 2012년 ‘사망 시 법정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하는 일반상해사망후유장해 가입금액 9,000만원’의 한화손해보험(주) 일반상해보험에 가입했다.
정씨는 2016년경에는 ‘주요우울병, 상세불명의 강박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자살에 대한 생각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므로 치료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취지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씨는 2018년 11월경에도 우울증 등의 진단을 받았는데 진료를 받으면서 “목을 매려고”, “손목도 긋고” 등의 발언을 한 기록이 있고, 당시 담당의사는 ‘임상증상의 호전이 뚜렷하지 않고 병식이 부족한 상태로서 보다 집중적인 치료(입원치료 등)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소견을 밝혔다.
정씨는 2019년 5월경 물품배송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2019년 10월경까지 치료를 받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 보름 전쯤에는 다니던 보험회사에서 퇴직했다.
정씨는 2019년 11월말 밤부터 새벽까지 친구들과 함께 소주와 맥주를 마셨고, 극단적 선택 직전에는 많이 취해서 비틀대고 구토를 했으며, 부모, 누나와 통화하면서 ‘미안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 정씨의 부모는 한화손해보험에 사망보험금 9천만 원의 지급청구를 했으나, 한화손해보험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망인의 자살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였다.
이 사건 1심을 심리한 인천지방법원 민사6단독판사는 “한화손해보험이 원고들에게 보험금 9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들 승’(인천지방법원 2020가단230214) 판결을 했으나, 항소심인 인천지방법원 제2민사부는 “망인이 원고들과 누나에게 통화한 사정 내지 자살방식과 같은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주된 근거로 들어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면서, 한화손해보험의 보험금 지급의무를 부정하는 ‘원고들 패’ 판결(인천지방법원 2023나62130)을 선고했다.
엇갈린 1·2심 판결에 이어 열린 대법원은 먼저 관련 법리로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 정신질환 등으로 자살한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었는지 여부는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그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그 진행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과 자살 무렵 자살자의 행태,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기타 자살의 동기,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2017다281367 판결)을 인용하면서, “아울러, 의사로부터 우울병 등의 진단을 받아 상당 기간 치료를 받아왔고 그 증상과 자살 사이에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자살 무렵의 상황을 평가할 때에는 그 상황 전체의 양상과 자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들어 그 상황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설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망인이 의도적으로 과도하게 음주를 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찾기 어렵다. 망인은 자살 9년 전부터 주요우울병 등의 진단하에 진료를 받아오다가 자살 1년 전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고 우울증을 겪으며 반복적으로 죽음을 생각해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데 자살 무렵의 신체적․경제적․사회적 문제로 망인을 둘러싼 상황이 지극히 나빠졌고 특히 자살 직전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망인이 원고들 및 누나와 통화하고 목을 매는 방식으로 자살한 것은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이후의 사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들을 면밀히 살펴보거나 심리하지 않고, 보험계약 약관 면책사유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면서,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은 인천지방법원 제4-2민사부가 맡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