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대법원이 형사사건 상고심 공개변론 촬영 동영상을 피고인 동의와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대법원 홈페이지 등 인터넷에 게시한 것은 초상권 침해로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1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12단독 유창훈 부장판사는 형사소송의 공동피고인이었던 장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고(대한민국)은 원고(장○○)에게 500만 원 및 그 지연이자를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2. 9. 23. 선고 2022가단211204)
대법원 제1부는 2020년 5월 실시한 '피고인 조영남 그림 판매 사기 사건'의 공개변론 동영상을 대법원 홈페이지와 일부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실시간 중계했다.
이 사건 재판중계는 ‘대법원에서의 변론에 관한 규칙(대법원규칙 제2841호)’ 제7조의2 제2항에 근거한 것이었으나 재판중계 실시에 관해 이 사건의 피고인이었던 조영남씨와 장씨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대법원에서의 변론에 관한 규칙’ 제7조의2 제2항은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법원 변론 또는 선고를 인터넷, 텔레비전 등 방송통신매체를 통해 방송하게 할 수 있고, 변론 또는 선고에 관한 녹음, 녹화의 결과물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공개변론과 재판중계의 이유는 ▶ 해당 형사사건은 미술계에서 첨예한 논쟁이 있었고 하급심 역시 제1심은 유죄로, 항소심은 무죄로 판단해 그 결론이 문화예술계에 상당한 파급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이슈 사안이었던 점, ▶ 공적 인물인 조영남씨 대한 형사사건으로 일반 대중의 공적 관심 사안이었던 점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공개변론에서는 조영남씨의 행위가 사기죄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관해 검사와 변호인의 변론, 전문가 참고인의 의견 진술 및 그에 대한 질의응답 등이 이루어진 반면, 그 과정에서 조영남씨의 공동피고인이던 장씨의 관여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장씨는 출석확인 절차에서 실명으로 호명됐고, 이후 변호인의 변론과정에서 장씨의 얼굴이 변호인의 변론 모습과 함께 수차례 중계영상에 노출됐으며, 마무리 단계에서는 장씨가 직접 최후진술을 하는 모습이 중계영상에 노출됐다.
대법원의 담당 공무원은 당시 촬영된 공개변론 동영상 중에서 장씨의 실명 부분은 들리지 않게 처리한 다음, 대법원 규칙에 근거해 공개변론 동영상을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했고, 해당 동영상은 대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특별한 절차 없이 일반 대중 누구나 시청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변론동영상 게시에 관해 공동피고인인 조영남씨와 장씨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에 장씨는 이후 “대법원 담당 공무원은 원고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이 사건 재판중계를 하고 변론동영상을 게시해 원고가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게 했고, 원고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이라는 낙인과 오명을 받게 되는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대법원 담당 공무원의 행위는 원고의 초상권과 개인정보를 침해한 위법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3천1백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피고(대한민국)는 “재판중계와 변론동영상 게시는 '대법원에서의 변론에 관한 규칙' 제7조의2 제2항에 근거한 것으로 그 과정에 위법, 부당한 목적이 없었고 그 기준을 현저히 위반하지도 않았다. 또한 재판공개의 원칙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조치였기도 하다. 대법원 담당 공무원의 행위는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유창훈 부장판사는 재판중계 조치와 변론동영상 게시 조치로 인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해서는 직무집행의 위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도, 초상권 침해에 대해서는 먼저 “이 사건 변론 동영상을 통한 원고의 개인정보 공개와는 달리, 공개변론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담당 공무원으로서는 원고의 동의 없이 원고의 얼굴이 노출되고 있는 변론 동영상이 초상권 침해 우려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 지금의 현실에서는 대부분 언론매체가 공적 인물이거나 공중의 관심 사안 등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 관여된 형사사건에 관해 사후적인 보도 내지 방송을 하는 경우 당사자의 동의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해당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방식으로 초상권 보호조치를 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 역시 공적 인물이 아니고 달리 원고의 얼굴 공개에 따른 공공의 이익도 상정할 수 없는 이상, 담당 공무원에 대해서는 노출된 원고의 얼굴에 대한 초상권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주의의무를 기대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대법원에서의 변론에 관한 규칙 제7조의2 제2항에서 그 구체적인 게시 방법을 정해 두지 않았다거나 그 게시 주체가 재판기관인 법원이라고 해서 달리 볼 수는 없다.”고 적시했다.
유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비록 이 사건 변론동영상 게시 조치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었고 부당한 목적은 없었던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변론동영상의 전체적인 내용에 비추어 위와 같은 보호조치를 하더라도 해당 형사사건에 관한 시청자들의 알 권리 보장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고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변론동영상의 게시 조치는 원고의 초상권 침해와 관련해서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이 부분에 관한 직무집행의 위법성은 인정된다. 피고에게는 그로 인해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유창훈 부장판사는 위자료의 액수에 관해서는 "변론동영상 게시에 따른 원고의 초상권 침해 정도, 게시의 대상인 해당 형사사건의 성격과 그 게시의 목적, 담당공무원의 조치 소홀의 경위와 정도 등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감안해 500만 원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1심 판결에 대해서는 재판공개의 원칙과 개인정보보호 원칙에 대한 관점에 따라 찬반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원고 장씨측은 1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해서도 명확히 인정받고자 한다면서 7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상급심에서는 어떤 판결이 나올 지 주목된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