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법원이 일정 범위의 소액사건에 대해 판결서에 이유를 간략히 기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법원재판예규를 행정예고하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소액사건의 판결이유 기재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경실련은 19일자 논평을 내고 “국민을 위한 충실한 재판을 도모하려는 법원의 개선의지를 환영하나, ‘노력해야 한다’는 임의규정은 법적 강제력이 없어 충분하지 않다.”면서, “재판받을 권리를 온전히 보장 하기 위해서는 소액사건심판의 판결이유 기재 의무를 법률로 규정하는 등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대법원은 9월 15일자 법원행정처장 명의의 ‘소액사건심판에 관한 사무처리요령 전부개정 예규안’ 행정예고를 통해, ‘‘1. 상계항변 등 판결의 이유에 의하여 기판력 여부가 좌우되는 경우, 2. 청구를 일부 기각하는 사안에서 계산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 3. 쟁점이 복잡하고 치열하게 다투어진 사건 등 당사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청구를 특정함에 필요한 사항 및 주문의 정당함을 뒷받침하는 공격방어방법에 관한 판단 요지를 판결서의 이유에 기재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해 소액재판의 충실화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소액사건은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민사소송 중 소송목적의 값이 3천만 원 이하인 사건으로 전체 민사본안사건 중 70% 이상이다. 소액사건의 10건 중 8건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 ‘나홀로 소송’으로 변호사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절대다수의 소액사건 판결문에는 판결 배경이나 법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
경실련은 “최저임금 근로자의 16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3천만 원을 ‘소액’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소액사건으로 분류되는 순간 사실상 단심제로 인해 재판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심급제도를 통해 잘못된 판결을 하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한 사건을 최대 3번까지 재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소액사건심판사건의 경우에는 2심 판결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될 때만 3심이 가능하다.
경실련은 “분쟁의 내용이 복잡한지 사안이 중대한지와 상관없이 3심을 제한해 기본 2심으로 진행하는데 심지어 1심은 판결이유마저 알 수 없다.”면서, “이유도 모르는 소송당사자들은 수긍이나 법리적 반박을 할 수 없어 항소(2심 신청)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현재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이러한 불합리한 특례들은 적은 법관이 과도하게 많은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한계로 생겨났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163명의 법관이 1인당 4,023건의 소액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데, 이는 독일의 약 5.17배, 프랑스의 약 2.36배, 일본의 3.05배에 달한다. 이러한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소액사건 담당 법관은 통계적으로 한 사건을 30분밖에 심리할 수 없다.
경실련은 “이러한 통계도 접수부터 선고까지의 시간을 광범위하게 추정한 것일 뿐, 보통 1~2분 내로 끝나는 소액재판에서 소송당사자는 변호사 조력 없이 논리정연하게 주장하기 어렵고, 법관은 판결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질의응답 등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면서, “소액사건의 범위도 본래 법률로 20만 원을 규정했다가, 대법원규칙으로 위임한 후 소액의 상식적인 범위가 무너지면서 현재 3천만 원까지 상향됐다. 독일은 약 82만 원, 일본은 610만 원이며 모두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고 짚었다.
경실련은 “이번에 발표된 법원의 예규개정안은 현실을 반영한 방안이나 최선은 아니다.”라면서, “법에서 이유 생략을 허용했는데 하위 행정규칙에서 이를 의무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정규칙 개정으로 권고의 효력이 강화되겠으나, 근본적으로 판결이유 생략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소액 민사사건은 소시민이 소송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민생과 직결된 문제다.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행정편의를 위한 부당한 특례는 폐지돼야 한다. 재판은 국민 누구나가 자신의 억울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법으로 정한 권리이며 절차다."라면서, “소액사건의 판결이유 기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20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잠자고 있다. 국회가 더 이상 묵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사법부는 법관 증원 등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인 김숙희 법무법인 문무 변호사는 소액재판의 충실화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변호사 경력자 중에 소액사건 전담 판사를 임용해 기존 판사와 경쟁하지 않게 하고, 급여를 줄여서 운영하는 ‘판사와 다른 직제의 소액사건 전담판사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