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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어 죽었다’ 막말한 의사 비판하는 전단지 배포한 유족, 명예훼손죄?

1심 유죄 벌금 3백→ 2심 일부유죄 벌금 50만원→ 대법원 "공공의 이익 위한 것” 무죄취지 파기환송
[한국법률일보] 의료사고로 숨진 환자의 유족이 재수가 없어 죽었다.”고 막말한 의사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병원 정문 앞길에서 배포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재판장 노정희 대법관, 주심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의료사고 유족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8421)

A씨는 자신의 모친이 일산 B대학교병원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자, 201711월 해당 병원 정문 앞길에서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배포했다.

A씨는 전단지에 잘못된 만행을 알리고자 합니다. B대학교병원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다 돌아가신 C님 아들입니다. 수술을 한 정형외과 D의사는 최초 수술한 E병원은 돌팔이 의사가 수술한 것이 운이 좋아 살았다라고 하고 자기가 수술하다 죽은 게 재수가 없어 죽었다.’ 이런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사란 사람이 상식 밖의 말을 하는지 B대학병원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형태로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을 반드시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문구와 수술경과 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첨부해 병원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A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졌고,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면서 벌금 3백만 원 형을 선고했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의정부지방법원의 항소심 재판부는 전단지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또는 평가를 침해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그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이를 배포한 피고인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A씨의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는 무죄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는 유죄로 판단하면서 벌금 50만 원의 형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다시 불복하면서 상고했고, 상고심을 심리한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이 전단지를 배포한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여부'였는 데, 대법원 제3부는 이 사건 전단지의 내용이 진실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피고인이 전단지를 배포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해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한 원심판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3부는 피고인은 B대학교 병원에서 수술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환자의 아들이고, 피해자는 망인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이다. 이 사건 전단지는 피고인이 의료사고로 사망한 환자의 유족으로서 담당 의료인인 피해자와 면담 과정에서 실제 경험한 일과 이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평가를 담고 있다.”면서, “이 사건 전단지의 주된 취지는 피해자가 의료사고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족에게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것으로서, 그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는 부족하고, 오히려 주요 부분에서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이 사건 전단지에 잘못된 만행’, ‘막말’, ‘상식 밖의 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이는 의료사고에 대응하는 피해자의 태도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약간 과장된 감정적 표현이나 의견 표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이 사건 전단지 내용은 환자가 사망한 의료사고의 발생과 이에 대한 담당 의료인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인한 의료소비자의 피해사례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제3부는 의료사고 발생 후 담당 의료인이 사망한 환자의 유족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감정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 이는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서 일탈행위를 한 것이라기보다는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에서 의료인의 자질과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러한 내용은 피해자에게 의료행위를 받고자 하는 환자 등 의료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권 행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정보로서 공적인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 스스로도 수사기관에서 이 사건 전단을 배포한 목적에 관해 피해자가 의사로서의 태도에 문제가 있어 책임을 묻고 다른 환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고 싶었다.’고 진술했다.”면서, “따라서 피고인의 주요한 동기나 목적은 다른 의료소비자에게 의료인인 피해자의 자질과 태도에 관한 정보나 의견을 제공하는 취지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3부는 이에 설령 피고인에게 부수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원망이나 억울함 등 다른 개인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었다고 해도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전단지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는지 등에 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피고인에 대해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부정해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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