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책연구소에서 일하다 퇴사 직전 연구자료가 담긴 파일을 임의로 반출한 후 이를 중국업체에 누설한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한국항공대학교 교수가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정희 대법관, 주심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산업기술보호법)위반죄와 <자본시장법>위반죄,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위반죄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국항공대학교 이모 교수의 상고심에서 상고를 모두 기각하면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 2021도3231)
이 교수는 2009년경부터 풍력 블레이드(풍력발전기의 날개)를 개발하거나 개발된 풍력 블레이드의 인증시험을 수행하고 블레이드의 설계와 시험평가·인증 기술을 보유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7년경 퇴직한 뒤 한국항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연구소 퇴사 직전 그동안 연구했던 자료를 비롯해 연구소의 자료들이 담긴 약 600GB 정도 파일들을 자신의 외부저장장치에 저장해 반출했고, 이를 토대로 한국항공대학교와 컨설팅계약을 맺은 중국업체에 풍력 블레이드 시험계획서 작성 등의 일을 해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출·사용한 기술은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에서 첨단기술로 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상 <산업기술보호법>상 ‘산업기술’에 해당하지 않고, 피고인이 사용·누설한 기술이 연구소에 의해 비밀로 지정된 바 없고, 보고서, 연구소의 홈페이지, 학술대회 발표 등을 통해 공개되었던 사실도 인정되므로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으며, 또 해당 기술은 이미 공개돼 있으므로 영업비밀 내지 중요한 영업용 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이 교수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은 무죄, <부정경쟁방지법>과 <업무상배임> 부분에서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일부 유죄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는 형식적인 분류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자료가 영업비밀의 요건(비공지성·경제성·비밀관리성)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면서, “피고인이 누설한 이 사건 기술은 그 자체로 영업비밀의 요건인 비공지성, 경제성, 비밀관리성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외국 회사에 이 사건 기술을 누설한 목적은 외국 회사가 단기간에 국책연구소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그 영업비밀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 연구소가 보유한 기술의 내용, 기술개발 과정, 다른 연구원들의 증언, 경제적 가치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연구소의 영업비밀 내지는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한다.”면서, 업무상배임 혐의도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 피고인이 유출하거나 사용한 자료들과 관련된 이 사건 기술이 <산업기술보호법>이 정한 ‘산업기술’에 해당하는지 여부, ▶ 피고인이 누설한 자료가 부정경쟁방지법이 정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 ▶ 피고인이 유출하거나 누설한 자료들이 ‘영업비밀’ 내지 ‘영업상 주요자산’에 해당해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 ▶ 피고인에게 업무상배임죄의 고의가 인정되는지 여부 등이었다.
대법원 제3부는 먼저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해 “<산업기술보호법>위반 부분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죄에서 ‘산업기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대해서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부분과 업무상배임 부분(각 무죄 부분 제외)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죄(영업비밀국외누설 등)에서의 ‘영업비밀’, 업무상배임죄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 고의,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누락, 이유모순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시하면서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