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경제개혁연대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 대한 취업제한 불승인을 취소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법무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즉각 상고해 최선을 다해 다투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제개혁연대는 31일 논평을 통해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단을 뒤집고 법무부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전 대표이사에 대한 취업제한 불승인을 취소했다.”면서, “이는 법률조항의 체계와 목적론적 해석에 부합하지 않고, 입법취지를 몰각한 부당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재판장 함상훈 고법부장판사, 권순열·표현덕 고법판사)는 법무부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에 따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전 대표이사에게 한 ‘취업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박찬구 회장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취업승인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19일 원고승소 판결을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21누35485)
1심인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2021년 2월 18일 법무부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서울행정법원 2020구합67681)했지만, 항소심에서 결론이 바뀐 것이다.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제1항은 동법이 처벌하는 주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일정 기간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는 ‘취업제한’을 정하고 있다. 다만, 동조 제2항은 예외적으로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취업승인을 받으면 취업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의 사건에서는 ‘집행유예 기간’에도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에 따라 취업제한이 발생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 동안만 취업이 제한될 뿐, 집행유예기간 자체는 취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애초 집행유예 기간에는 취업제한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박 회장에 대한 취업제한이나 취업승인 거부는 잘못됐다는 취지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러나 이번 판결은 법률조항에 대한 체계적·합목적적 해석에 맞지 않는다. 일반국민의 이해나 상식과도 동떨어진 결론”이라면서, “특히 취업제한의 취지나 실효성을 크게 퇴색시켰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제1항은 각호의 기간에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면서 집행유예는 제2호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이라고 정하고 있다. 법률 문언은 가능하다면 해석의 여지없이 명확해야 하지만, 문언적 의미가 언제나 명확할 수 없고, 이 경우 입법취지나 다른 조항과의 체계를 고려해 통상적인 의미 내에서 입법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이번 판결과 같이 취업제한 규정을 이해하면, 여러 가지 모순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는 먼저 “집행유예 중에는 취업이 가능하지만, 오히려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후에 비로소 취업이 제한된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모순”이라면서, “비록 형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긴 하나, 집행유예 역시 형사처벌의 일환이다. 나아가 집행유예는 범죄 이후 가까운 시기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유사 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런데 집행유예 기간에는 오히려 취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제재나 재범 억제의 기능이 무색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징역형이나 집행유예가 길수록, 유죄판결 직후에는 오히려 더 오랫동안 취업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불균형이 발생한다.”면서, “예컨대 3년의 징역형 또는 집행유예 처벌을 받으면 3년간은 취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더 무거운 처벌인 5년의 징역형 또는 집행유예를 받으면, 오히려 더 긴 기간인 5년 동안 취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판결에 따르면 형량에 상관없이 징역형이나 집행유예 종료 후 취업제한 기간이 동일해진다는 것도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즉, 징역 3년이든 징역 10년이든 취업제한 기간은 5년으로 같게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스스로 지적했듯이 선고유예는 집행유예보다 가벼운 처벌임에도 취업제한은 집행유예의 경우와 같은 기간인 2년 동안 발생하는 것도 명백히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판결은 "취업제한 규정을 위반할 경우 해임이 요구되거나 형벌의 제재까지 받게 되므로 이 사건 조항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원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설시했다면서, “법률해석이 법률 자체를 넘어설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해석의 엄격함은 모든 법률조항에 일률적으로 적용되기보다는 구체적인 조항마다 실질적인 적용 범위나 취지를 고려해 어느 정도 유연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취업제한은 일반적인 임직원에게는 적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횡령, 배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회사에 그대로 재직하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찬구와 같이 지배주주로서 회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에는 회사에 피해를 입힌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계속 주요 경영진으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특정경제범죄법이 취업제한과 같은 제재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즉, 취업제한은 지배주주와 같이 회사의 자체적인 통제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대상에게만, 매우 한정적으로 규범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법률조항에 대해서까지 법원이 지나치게 법률 문언의 엄격함을 강조하는 것 역시 해석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애초에 박찬구가 금호석유화학 등에 취업이 제한된 이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박찬구는 아들 박준경을 위해 약 107억원의 회사자금을 경영상 목적과 무관하게 담보 없이 낮은 이율로 빌려준 배임행위, 개인적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 명의로 약 32억원의 어음을 발행한 배임행위로 인해,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의 처벌을 받았다."면서,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힌 중대한 경제범죄에 대해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도 납득하기가 어렵지만, 집행유예 기간에도 이 같은 범죄와 상관없이 대표이사로 재직할 수 있다는 이번 판결은 취업제한의 취지와 실효성을 완전히 몰각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법무부에 대해서도 “이번 판결의 부당성과 별개로 법무부도 사실상 직무유기에 가까운 법 집행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법무부는 2018년 9월 이전까지는 취업제한 사실에 관한 통지나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취업제한을 위반한 사람에 대한 해임 요구나 고발 등 적법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역시 제대로 행사한 사실이 없다.”면서, “법무부가 지금이라도 취업제한의 취지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즉각 상고를 제기하고, 최선을 다해 다투어야 한다. 나아가 이미 취업제한을 위반한 자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포함해, 실효성 있는 법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