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물을 증거로 인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의 효력은 위헌결정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인 병행사건에도 미친다면서,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출석 없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정희 대법관, 주심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13세미만 미성년자 위계등 간음·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1도14530)
이 사건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13세 미만인 피해자가 잠을 자기 위해 방에 누워 있을 때, 피해자의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혐의사실은 <성폭력처벌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 위력 유사성행위 및 추행에 해당한다.
1심과 항소심은 2021년 A씨에게 피해자의 진술과 조사과정을 촬영한 영상물을 중요한 증거로 삼아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하급심 소송절차에서 A씨는 이 사건 영상물과 속기록을 증거로 할 수 있음을 동의하지 않았고,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급심에서는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신문했고, 그 증인은 영상물이 진정하게 성립했다고 진술했다.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은 신뢰관계인의 진술로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피해자의 진술 없이도 영상물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제26조 제6항도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만약 <성폭력처벌법> 및 <청소년성보호법>의 위 규정이 없었다면 A씨가 영상물의 증거능력을 동의하지 않는 이상 피해자의 법정진술에 의해 영상물의 진정성립이 인정돼야 증거능력이 인정되고, 신뢰관계인의 진술만으로는 영상물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항소심 선고일인 2021. 10. 13. 이후인 2021년 12월 23일 <성폭력처벌법>(2012. 12. 18. 법률 제11556호로 전부 개정된 것) 제30조 제6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2018헌바524)
헌법재판소는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 중 ‘제1항에 따라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 증거로 할 수 있다’는 부분 가운데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면서, 이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화적인 방법을 상정할 수 있음에도, 이 사건 규정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배제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므로 피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결정이유를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의 목적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증언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심판대상조항이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인 등의 성립인정 진술이 있는 경우에도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의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해 피해자에 대한 법정에서의 조사와 신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러한 목적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도, “성폭력범죄의 특성상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고, 이러한 진술증거에 대한 탄핵의 필요성이 인정됨에도 심판대상조항은 그러한 주요 진술증거의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대체할 만한 수단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제3부에서는 원심 선고 당시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없었고 위헌결정은 원심 선고 이후에 이루어졌는데 위와 같은 위헌결정의 효력이 상고심 단계에 이른 이 사건에도 미치는지가 쟁점이 됐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성폭력처벌법>에 대한 것이고 <청소년성보호법>에 대해서는 아직 위헌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위헌결정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성보호법>을 적용하는 것이 적법한지도 쟁점이었다.
대법원 제3부는 먼저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의 효력은 법원에 계속 중이던 이 사건에도 미친다.”면서, “이 사건 위헌법률조항은 이 사건 영상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 사건 속기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근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은 비형벌조항이고, 비형벌조항의 경우에도 당해 사건(위헌법률심판 제청 또는 헌법소원의 기초가 된 당해 본안사건), 병행사건(위헌결정 당시 위헌결정 대상인 조항이 적용되는 상태로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위헌결정의 효력이 (소급해) 미친다고 해석하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이라면서, "즉, 대법원에 의해 종래 확립된 법리에 따르면 비형벌조항의 경우도 당해 사건과 병행사건에 대해서는 위헌결정의 효력이 소급해 인정된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은 병행사건이므로 위헌 결정의 효력이 이 사건에도 미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제3부는 또 “<청소년성보호법> 제26조 제6항 중 이 사건 위헌 법률 조항과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부분은 이 사건 위헌결정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위헌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 이유와 마찬가지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수 있으므로, 하급심에서 청소년성보호법의 위 조항이 위헌인지 여부 또는 그 적용에 따른 위헌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소환해 진술을 듣고 피고인에게 반대신문권을 행사할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 등에 관해 심리·판단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은 위헌결정의 효력 범위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주문에 표시된 법률조항에 대해서만 위헌 결정의 효력이 미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아직 위헌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청소년성보호법> 제26조는 위헌 결정이 이루어진 <성폭력처벌법> 제30조와 달리 유효한 법률이다. 그러나 이미 위헌 선언된 <성폭력처벌법> 규정과 조문의 내용이 같은 <청소년성보호법> 규정을 그 위헌성에 대한 고려 없이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대법원은 합헌적인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급심에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위헌결정이 이루어진 이상,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의 조사과정을 촬영했더라도, 피고인이 그 영상물을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면서, “법원행정처는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피고인과 분리·독립된 장소에서 증언할 수 있도록 해 2차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또한 조화롭게 보장하는 방안으로 영상재판의 활용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설치·운영하고 있는 해바라기센터를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출석장소로 활용하는 ‘해바라기센터 연계 영상증인신문’을 추진했고, 지난달 11일부터 시범실시 하고 있다.”면서, “1개월 정도의 시범실시를 거친 후 그 성과를 면밀히 분석해, 이르면 이달부터 전국 39곳의 해바라기센터를 대상으로 해바라기센터 연계 영상증인신문을 전면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