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부하 초급장교 성폭행 혐의’ 해군 대령···대법원, 유죄 취지 파기환송

‘상습 성폭행 혐의’ 해군 소령은 무죄 확정···“피해자 진술 신빙성 부족”
[한국법률일보] 성소수자인 부하 초급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고등군사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해군 대령에게 대법원이 34개월 만에 유죄 취지로 판결했다. 반면, 같은 피해자를 여러 차례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직속상관 해군 소령에 대해서는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제1(재판장 노태악 대법관, 주심 박정화 대법관, 김선수·오경미 대법관)는 군인등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해군 대령 김모씨(범행 당시 중령·함장)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고등군사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1819037)

이 사건 공소사실에 따르면, 20096월 해군 학사사관 장교(소위)로 임관한 20대 여성 C씨는 직속상관인 박모소령으로부터 20109월경부터 20101031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강제 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임신하게 된 C씨는 당시 함장이던 김대령에게 피해 내용을 보고 했다.

그러나 김 대령은 201012월 초 티타임을 갖자는 명목으로 C씨를 자신의 영관장교 독신자 숙소로 불러 강제로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C씨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해 김 대령에게 징역 8, 박 소령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김 대령 사건에 대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의 진술은 범행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난 후의 기억에 의존한 것인데 진술 내용에 모순이 되는 부분, 객관적인 정황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피해자의 기억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무죄로 판결했다.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의 진술과 상반되는 피고인의 주장은 객관적인 정황에 비추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 쉽게 배척할 수 없다. 따라서 피해자의 진술은 의도적으로 행해진 허위의 진술은 아니라고 해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면서, “설령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폭행·협박이라는 수단을 써서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왜냐하면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피해자의 팔 윗부분을 붙잡은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반항을 제압하려는 의사나 인식에 따라 위와 같은 행위를 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설시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범행 경위에 관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한 원심의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일탈한 잘못이 있는지, 군인등강간죄 또는 군인등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이 있었는지, 피고인들에게 범행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의 판단을 달랐다. 대법원 제1부는 김대령 사건에 대해 피해자 진술은 사건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진술을 통해 그 진실성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김대령의 변소내용은 피해자의 요구나 용인 아래 자연스럽게 신체접촉 행위를 했다는 취지지만 구체적 내용은 일반의 통념에 비추어 자연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험의 법칙에 비추어 합리성이 없다. 이러한 사정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간접사실이 될 수 있다."면서, "그런데도 원심은 공소사실의 핵심 경위에 관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했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군인등강간치상죄의 폭행 및 피고인의 고의에 관해서도, "군인 등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김대령의 폭행이 있었고, 그에 관한 김대령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김대령의 행위가 상당히 기습적으로 이루어졌고, 당시 피해자는 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급장교로서 평소 지휘관인 김대령의 지시에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는 지위에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김대령의 행위는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유형력 행사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특히 피해자는 당시 박소령과의 원치 않는 성관계로 임신하고 임신중절 수술까지 받은 일들로 인해 정신적·육체적으로 무력한 상태에서 평소 신뢰하던 지휘관인 김대령으로부터 같은 일을 당하자 정신적으로 크나큰 충격을 받게 됐고, 그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법원 제3(재판장 노정희 대법관, 주심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소령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대법원 201819472)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박소령의 범행 경위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박소령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해 피해자를 추행했다고 보기 어렵고, (증명된 범위 내) 피고인의 각 행위를 이른바 기습추행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모텔에 가게 된 경위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은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에 배치돼 믿기 어렵고,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강간의 수단이 되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박모 소령 사건에서 "원심이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한 정황이 있고, 따라서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유죄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에는 수긍할 수 있는 면이 있으므로 원심의 결론을 유지한다.”면서, 군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고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단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인숙 변호사는 해군상관에의한성소수자여군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두번째 성폭력에 대해서 피해자 진술신빙성을 인정하면서도, 첫번째 가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 진술신빙성을 달리 판단하는 것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이 두 사건의 가해자는 서로 진술을 맞추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두 사건을 따로 보아 하나는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고 하나는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아서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던 가해자를 완전히 본인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은 심히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특히 대법원이 재판부가 다르게 배정되면 달리 판단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면서, “이런 사건은 병합해 한 재판부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았나,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PC버전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서울 아04223

Copyright ⓒ 한국법률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