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경찰이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이른바 ‘묻지마 폭행·욕설’을 한 뒤 범행을 부인하는 취객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이동원 대법관, 주심 조재연 대법관, 민유숙·천대엽 대법관)는 모욕과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2021도12213)
A씨는 2019년 7월 8일 오전 0시 50분경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하기 위해 앉아있던 B씨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고 밀치고 잡아당기는 등으로 폭행했다.
A씨는 식당 종업원의 112신고로 경찰관들이 출동 했을 때에도 B씨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시비를 걸었다. B씨는 경찰관들에게 전혀 알지 못하는 A씨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C경찰관은 식당에서 CCTV 영상을 보고 폭행상황을 확인한 뒤 다른 경찰관 D로부터 식당 바깥의 상황을 전달받은 후 식당 밖으로 나와 그곳에 있던 A씨에게 피의사실의 요지 등을 고지하고 현행범인으로 체포했다.
A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돼 온 경기 안양시 안양지구대에서도 30분간 돌아다니며 경찰관 8명에게 “너희들 모가지 날려버린다”, “가까이 오면 때린다”면서 소란을 피우고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재판에서 식당 CCTV가 있고 경찰관에게 신분증도 제시했기 때문에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데도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1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허문희 판사는 “경찰관의 피고인에 대한 현행범인 체포는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피고인에게 40차례 폭력전과가 있는 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A씨에게 벌금 60만 원형을 선고했다. 다만 모욕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인 수원지방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김은성 부장판사)는 “"A씨는 이미 신분증을 제시해 신분을 밝혔고 주소지가 현장과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분이 불확실하다고 보기 어렵다. CCTV 등을 통해 증거는 충분히 확보됐고 A씨가 폭행 범행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수사협조를 정면으로 거부하지는 않았으며 특별히 도망이나 증거인멸 시도 정황이 보이지 않아 출동 경찰관들이 A씨에 대한 체포의 필요성에 대해 재량의 범위 내에서 요구되는 진지한 고려를 다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면서, "당시 현행범 체포는 적법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한 A씨의 행위는 경범죄처벌법 제3조 3항 1호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거나 정당방위 내지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하고, 1심판결 중 유죄부분인 경범죄처벌법위반의 점을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 제2부는 먼저 “범죄를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의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고(형사소송법 제212조), 현행범인으로 체포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가벌성과 범죄의 현행성·시간적 접착성, 범인·범죄의 명백성 외에 체포의 필요성, 즉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98도3029 판결)”면서 “이러한 현행범인 체포의 요건을 갖추었는지는 체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판단해야 하고 이에 관한 수사주체의 판단에는 상당한 재량의 여지가 있어 체포 당시의 상황에서 보아 그 요건에 관한 수사주체의 판단이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이 없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수사주체의 현행범인 체포를 위법하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2도8184 판결, 대법원 2015도13726 판결)”라고 설시했다.
이어 “경찰관들이 출동했을 당시 피고인이 폭행 이후에도 계속해서 B씨에게 욕설을 하면서 시비를 거는 등 폭행범행이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였다고 볼 수 있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늦은 밤 식당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일방적으로 폭행에 이른 범행경위에 비추어 볼 때 사안 자체가 경미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또 피고인은 경찰관이 출동한 이후 CCTV 영상으로 확인되는 폭행상황과는 달리 자신의 범행은 부인하면서 피해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피고인이 제시한 신분증의 주소는 거제시로서 사건 현장인 안양시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위와 같은 폭행에 이르게 된 범행경위를 고려할 때 추가적인 거소 확인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등으로 피고인에게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을 현행범인으로 체포한 경찰관의 행위가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경우에 해당하는 위법한 체포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그럼에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출동 경찰관들이 피고인에 대한 체포의 필요성에 대해 재량의 범위 내에서 요구되는 진지한 고려를 다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해 피고인에 대한 현행범인 체포가 위법하다고 판단했으니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현행범인 체포의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