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재외국민의 선거권 보장을 외면한 헌법재판소를 규탄하고 나섰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8일 논평을 내고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재외국민들의 선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헌법재판소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내용”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수천, 수만 ㎞를 이동해 투표소가 설치된 한국영사관에 찾아간 국민들에게 어떠한 대안적 조치를 마련하지 않고 되돌려 보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헌적인 선거사무중지결정에 대해 판단을 회피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20년 3월 독일 등 17개국 23개 재외공관에 설치된 재외선거관리위원회의 재외선거사무를 중지한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재외국민들의 헌법소원을 각하하는 결정을 했다.(헌법재판소 2022년 1월 27일 선고 2020헌마497 결정)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결정에서 형식적인 이유로 본안에 대한 판단 없이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한 재외국민(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독일과 캐나다 등 외국에 체류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다. 이들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재외투표기관에 각 나라의 재외공관에서 투표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등을 이유로 중앙선관위가 재외선거사무를 갑작스럽게 중단하면서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
청구인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어떠한 대안적 조치도 없이 일방적으로 중단되는 기본권 침해상황에서 구제를 위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들은 시급한 권리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헌법재판소법 제40조에 따른 가처분도 신청했다.
민변은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투표기간 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는 청구인들의 가처분신청과 신문기일 지정신청에 응답하지 않았으며, 사건이 접수된 뒤 약 1년 8개월이라는 장기간 심리를 했음에도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헌법적 해명 없이 형식적인 이유를 들어 헌법소원을 각하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헌법재판소는 두 가지 이유로 청구인들의 심판청구가 적법하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그 이유를 살펴보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민변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이미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심판청구가 인용되더라도 청구인들의 권리구제에 도움이 되지 않아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봤다.
청구인들은 해외에 체류하면서도 재외공관 투표가 시작되는 첫날인 2020년 4월 1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와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리고 선거가 그해 4월 15일 종료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심문기일의 지정 등 권리구제를 위한 절차를 신청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의 신청에 일체 응답하지 않았고, 선거는 끝났다.
민변은 “권리보호이익을 이유로 청구인들의 헌법소원을 각하한 것은 헌법재판소가 적시에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또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의 반복가능성이 또는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이 있으면 권리보호이익이 없어도 심판의 이익을 인정해 본안 판단을 할 수 있었지만, 심판의 이익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행정청이 법 규정을 위헌적으로 해석·적용할 때 인정되지만 법률의 해석·적용이나 포섭 여부가 문제될 때는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선거 진행이 독일·캐나다의 방역지침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는지, 그에 따라 청구인들이 제제조치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등 재외선거사무 중지결정이 단순히 법률의 해석·적용 또는 포섭의 문제라고 봤다. 즉 청구인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헌재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변은 “그러나 청구인들은 당시 선거를 진행하는 것이 독일과 캐나다에서 방역지침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면서,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이유로 청구인들의 헌법소원을 각하할 것이라면 최소한 당시 청구인들이 신청한 투표소의 구체적인 상황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심리를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 번의 사실조회만으로 청구인들마다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니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이 없다고 각하한 것은 직무유기라는 지적이다.
민변은 “또 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의 주장을 이 사건 중지결정이 공직선거법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축소해 그 심판의 이익을 부정했다.”면서 “이는 헌법재판소가 부당히 청구인들의 주장을 축소해 해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청구인들은 대안의 제공 없이 중앙선관위가 일방적으로 재외선거사무를 중지해 발생한 기본권 침해를 주장했고,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직권으로 우편 투표 등 대안 없이 재외선거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에 의한 기본권 침해의 위헌성을 판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적이고 기초적인 권리”라면서 “헌법재판소가 형식적인 법리 뒤에 숨지 않고, 기본권을 침해당한 국민들의 절박한 호소에 적절이 응답하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보루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국회는 우편투표 제도의 도입 등 재외국민들의 선거권 박탈을 재발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