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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동자 ‘다발성경화증’ 대법원 첫 산재 인정...민변, '환영'

민변, 판결취지 신속반영과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확대 입법조치 촉구

 [로팩트 신종철 기자] 삼성전자 LCD 공장 노동자의 희귀질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삼성전자 반도체, LCD 공장에서 근무한 근로자의 직업병 산재사건의 경우 근로복지공단 또는 하급심 단계에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 확정된 사례는 있으나, 대법원에 상고 제기되었던 사건들 중에서는 대법원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판결 사례다.

 대법원 제3(주심 김재형 대법관)29일 삼성전자 천안LCD공장에 근무하면서 다발성경화증이 발병한 이OO 근로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요양 불승인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씨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 악화와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상당하다고 봐, 이와 달리 본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다발성 경화증이란 중추신경계의 대표적인 탈수초성 질환의 하나로서, 신경섬유의 파괴와 혈관 주위 염증을 동반해 시신경, 척수 또는 뇌에 초점성 증상들이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나타났다가 다양한 정도로 완화되고 여러 해가 지난 후 재발하면서 점차 진행하는 특성이 있으며,

유병율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3.5명에 불과한 희귀질환이다.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원인이나 발병기전(mechanism)은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현재까지의 역학조사결과를 종합하면 다발성 경화증은 면역학적 기전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추단되고 있다.

 이OO(1984년생)씨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2002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천안 LCD 공장에서 모듈공정(부품을 조립해 LCD 패널을 완성하는 공정) LCD 패널 검사작업을 했는데, 재직 중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

이씨는 여러 지역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정확한 질병 진단을 받지 못하다가, 그 증상이 악화돼 20072월 삼성전자에서 퇴사했다. 퇴사 후 20089월경에서야 대학병원에서 다발성 경화증 확진을 받았다.

 이씨는 자신의 다발성 경화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20107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대법원에 따르면 역학조사에서는 이씨가 평소 검사작업을 하면서 유기용제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해당 공정에서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 근로자에게 직접 미치는 노출 정도나 그 밖에 인접 세부공정에서 발생해 전파 확산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를 측정 조사하지도 않는 등, 역학조사 자체에 한계가 있었다고 봤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 결과를 기초로, 20112월 요양불승인 처분을 했다.

이 소송에서 이씨는 자신이 작업 과정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자의 LCD 사업부가 2012년에 분할되어 설립된 회사)의 천안아산공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진단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와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했고, 1심 법원이 이를 채택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대한산업보건협회가 20134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진단을 실시해 20135월 작성한 결과보고서 중에서 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의 현황 및 개선방안, 작업환경측정 현황 및 개선방안, 안전검사 실시 현황, 누출시 물질배출처리시스템 현황, 보호구 지급 현황과 개선방안, 근로자 건강관리 현황과 개선방안 등에 관한 정보는 위 회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므로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며 그에 관한 정보를 삭제한 채로 1심 법원에 제출했다.

원심(서울고법)은 이OO씨가 주장하는 작업환경상 개별 위험요인들의 위험노출 정도가 높지 않아, 이씨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악화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씨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재판부는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 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율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율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율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율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봤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첫째 원고는 삼성전자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다발성 경화증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없는데, 삼성전자 LCD공장에서 상당 기간 근무하던 도중에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38) 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만 21세 무렵에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한 점에 주목했다.

 둘째 다발성 경화증의 직접 발병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유기용제 노출, 야간 교대근무, 업무상 스트레스, 햇빛노출 부족에 따른 비타민D 결핍 등이 거론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정이 다수 중첩될 경우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또는 악화에 복합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세 번째 역학조사 방식 자체에 한계가 있었고, 사업주와 관련 행정청이 해당 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 등에 관한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원고가 유해화학물질의 구체적 종류나 그에 대한 노출 정도를 증명하는 것이 곤란해진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므로 이를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를 종합하면, 원고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악화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상당하다고 봐, 이와 달리 작업환경상 개별 위험요인들의 위험노출 정도가 높지 않아 원고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악화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 의미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그간 행정실무 및 하급심 재판실무에서는 작업환경의 개별 유해요인을 따로 떼어내어, 개별 유해요인(개별 화학물질)마다 그 위험 정도 또는 그 위험에의 노출 정도가 적다는 판단을 하고, 나아가 그러한 부분적 판단을 집적해 전체적으로도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른바 희귀질환의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율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율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율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율이 높은 특별한 사정,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상당인과관계 판단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향후 행정실무 및 재판실무에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산업현장에서 비록 노출허용기준 이하의 저농도라 할지라도 상시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현대의학으로도 그 발병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에도 보다 전향적으로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 산재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하며, 이것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산업재해보험보상제도의 본래 목적과 기능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변 대법원 판결 크게 환영   

이번 판결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삼성전자 직업병 피해 노동자가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면서 삼성LCD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민변(회장 정연순)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노동자들의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산재보험제도의 본래 취지를 몰각한 채 자연과학적의학적 관련성 판단에 집착하는 매우 협소한 기준을 고집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직업병 피해노동자들이 치료생계비 문제마저 스스로 떠안아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왔다고 지적하며 이번 판결은 공단의 그러한 잘못을 분명하게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변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공장 내부의 문제가 일부 드러나고, 반도체LCD 노동자 20여명의 10개 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시민단체 반올림700일 가까운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민변은 물론 가장 큰 책임은 가해자인 삼성전자에게 있다그러나 산재보상 대상을 협소하게 인정하고, 산재 심사 과정에서 만연해 왔던 사업주의 자료 은폐나 산보연의 조사 부실 문제 등을 외면한 정부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는 그 동안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싸워온 직업병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오랜 외침들이 촘촘히 묻어있다. 무엇보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를 운영함에 있어서는 그 본래적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라는 최고법원의 준엄한 명령이 담겼다산재보험제도와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삼성반도체 직업병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민변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크게 환영하며, 근로복지공단이 모든 사건에 이번 판결의 취지를 신속하게 반영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판결 취지에 맞게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확대되고 입증책임 문제가 개선되는 입법적인 조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신종철 기자 desk@lawfac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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