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채무자 재산상황 알 수 있는 특수관계 아니라면 사해행위취소 안돼"···파기환송
  • 사해행위취소소송 수익자의 선의 증명 방법 구체적 기준
  • [한국법률일보]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은 제3자에게 금전을 대여받으면서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행위는 사해행위로 취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박영재 대법관, 주심 권영준 대법관, 오경미·엄상필 대법관)는 채권자 A가 이혼한 남편 B의 수익자 C를 상대로 제기한 사해행위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지난달 14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에 환송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A가 이혼한 남편이자 채무자인 B에 대해 2014년 경 이혼 및 재산분할청구 확정판결로 439,000,000원 상당의 재산분할금 채권을 보유하면서 시작됐다. 이 채권은 B의 일부 변제 후 327,195,890원과 그 지연손해금이 남아 있었다.

    이후 B는 2015년 8월 파주시 토지를 매입해 단독주택을 신축했는데, 이는 B의 유일한 부동산이었다. 2022년 8월, B는 C에게 2억 원을 대여받으면서 이 부동산에 채권최고액 2억4천만 원의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하고 그 설정 등기를 마쳐 주었다. 당시 이 부동산에는 D조합의 선순위 근저당권(채권최고액 4억8백만 원)과 전세권자 E의 전세권(전세금 2억 원)이 설정돼 있었다.

    그러다 2023년 5월 D조합의 신청으로 이 부동산에 대한 임의경매 절차가 개시됐고, 2024년 7월 배당기일에서 C에게 155,335,605원의 배당금이 확정됐다. 이에 A는 C에 대한 사해행위취소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해서 C의 배당금채권에 대해 지급금지가처분결정을 받으면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수익자가 자신의 선의를 증명하는 방법에 관한 구체적 기준이었다.

    1·2심을 맡은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과 의정부지방법원 재판부는 “채무자 B가 무자력인 상태에서 그 소유의 유일한 부동산을 C에게 담보로 제공한 근저당권설정계약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2심 재판부는 특히 “B의 A에 대한 채무나 B의 무자력 여부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단지 B가 전세금 반환을 위해 필요하다는 부탁을 해 돈을 빌려주고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했을 뿐”이라는 취지의 피고 C의 주장과 항변에 대해,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C가 D에 대한 전세금 반환 명목으로 금원을 차용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 당시 부동산에 이미 선순위 근저당권과 전세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건의 근저당권이 단기간 내 설정되었다가 말소된 복잡한 내역이 존재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피고가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계약이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 몰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피고는 항소에 이어 상고하면서 다퉜고, 결국 대법원의 판단을 달랐다.

    대법원 제2부는 먼저 다음과 같이 관련 법리를 밝혔다.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수익자가 사해행위임을 몰랐다는 사실은 수익자 자신이 증명해야 한다. 수익자의 선의 여부는 채무자와 수익자의 관계, 사해행위를 구성하는 법률행위의 내용과 그에 이르게 된 경위 또는 동기, 그 행위의 거래조건이 정상적이고 이를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며 정상적인 거래관계임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지, 그 행위 이후의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리칙·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수익자가 채무자와 친인척 관계 등 채무자의 재산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 수익자와 채무자의 거래관계가 그 내용과 경위 등에 비추어 정상적인 범위 내에 있고 수익자가 그 거래관계에 따른 상당한 대가를 채무자에게 실제로 지급하는 등 해당 거래관계에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인 사정 이 없다는 점, 수익자가 채무자로부터 물적 담보 제공을 받는 경우에는 더 나아가 수익자의 기존 채권에 관해 다른 일반채권자들의 채권보다 우선적으로 만족을 얻기 위해 담보 제공이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는 점을 수익자가 증명하면, 수익자가 사해행위로 인한 공동담보 부족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볼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익자의 선의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해당 거래관계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경위나 거래관계의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거래조건 등이 일반적인 거래관행과 어느 정도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거래관계가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수익자에게 과실이 있는지는 수익자의 선의 판단에 문제되지 아니하므로, 수익자가 사해행위 당시 채무자의 재산 상황을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수익자의 선의 주장을 쉽게 배척해서는 아니 된다.

    사해행위가 물적 담보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 수익자가 담보물의 객관적인 담보가치를 신뢰해 그 담보가액 범위 내의 금전을 제공한 사정은 수익자의 선의 판단에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될 수 있으나, 담보물의 담보가치가 수익자의 채권액에 미달한다는 사정만으로 수익자의 선의 주장을 쉽게 배척해서도 아니 된다.

    대법원 제2부는 이 사건에 관해 “피고는 B와 친인척 관계 등 B의 재산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다. 근저당권 설정계약이나 이를 둘러싼 거래관계가 그 내용과 경위 등에 비추어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이라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 또한 피고는 C에 대한 기존 채권에 관해 근저당권 설정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B에게 신규 자금 200,000,000원을 대여하면서 같은 날 근저당권 설정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피고가 자신의 기존 채권에 관해 다른 일반채권자들의 채권보다 우선적으로 만족을 얻기 위해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면서, “더욱이 피고로서는 근저당권 설정계약 당시 이 사건 부동산의 객관적인 담보가치가 대여금액을 담보하기에 충분하다고 인식하고, 그 담보가치를 신뢰해 그 담보가액 범위 내의 금원을 대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피고는 근저당권 설정계약이 원고를 비롯한 다른 일반채권자들을 해하는 사해행위가 된다는 점을 알지 못한 선의의 수익자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2부는 “비록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해 여러 건의 근저당권 설정등기가 마쳐졌다가 단기 간 내 말소된 내역이 존재하고, 그와 관련해 원고의 근저당권자들에 대한 사해행위 취소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원고의 사해행위취소소송 제기 사실이 등기부에 나타나 있지 않은 이상 이를 피고가 B의 채무초과 상태를 의심할 만한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제2부는 결국 “원심의 판단에는 사해행위 수익자의 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고 밝혔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금 채권 관계에서 출발해 복잡한 부동산 담보 거래와 이어진 경매, 그리고 사해행위취소소송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채권자취소권 행사에 있어 채권자와 특히 금융기관 등 제3자의 입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채무자와 특수한 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금융기관의 경우, 정당한 담보가치를 확인하고 신규 자금을 제공했다면, 채무자가 무자력 상태였더라도 이번 판결로 사해행위취소소송의 피고가 돼 근저당권이 취소될 위험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채권자는 사해행위취소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등기부 현황 분석을 넘어, 수익자와 채무자의 구체적인 ‘특수관계’를 입증하거나, 거래 자체의 현저한 비정상성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
  • 글쓴날 : [25-09-1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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