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축구팀에서 감독을 지낸 사람이 다음 시즌 심판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축구 팬은 물론, 모든 스포츠 팬이 분노하고 해당 리그의 공정성 자체를 의심할 것이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생명처럼 여기는 스포츠계에서는 규정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명백한 이해충돌은 그 자체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법의 정의를 세워야 할 수사 현장에서 '新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더욱 교묘히 벌어지고 있다. 과거 법원과 검찰청 담장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전관 카르텔은 이제 경찰, 국세청 등 다른 권력기관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러한 유착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7월 울산지역 경찰 간부 출신인 대형 로펌 전문위원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당시 해당 전문위원은 도박 사건 피의자들을 상대로 수사팀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자신이 속한 로펌에 사건을 맡기도록 유도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2022년에는 자산운용사 소송을 대리하던 경찰대 출신 변호사가 압수수색 직후 수사팀과 저녁 식사를 하는 등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통계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23년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 결과’에 따르면 경찰청 소속 공직자 125명 중 54명(43%)이 로펌 이적 심사를 신청했다. 특히 이들 중 44명은 특정 로펌 한 곳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경실련의 2022년 ‘경제 부처 퇴직 공직자 재취업 현황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국세청 퇴직자 120명 중 40% 이상이 ‘법무·회계·세무법인’에 진출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고문’, ‘자문위원’의 타이틀을 품은 채 로펌으로 향하는 적지 않은 이들이 되려 법조시장의 질서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자문 역할만 수행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건 수임에 영향을 미치거나 권한을 넘어선 법률 사무를 맡아 수행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위법 행위를 감독하고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현재 우리 법조계에는 마련돼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무너진 사법 신뢰를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뜻을 같이하는 법조인과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열린법조시민참여연합’(가칭)이라는 이름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법조계를 넘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새로운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열린법조시민참여연합이 꿈꾸는 법조계는 특정 출신이라는 간판이 아닌 오직 법리와 증거만이 통하는, 상식이 바로 서는 곳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고위공직자 출신을 통한 사건 알선 행위, 전관의 영향력을 암시하는 허위·과장 광고 등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관행에 맞서고자 한다. 나아가 이러한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주도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법조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제안해 나갈 것이다.
이 소중한 변화는 법조인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시민의 목소리가 더해져야 할 때다. 법조계와 시민이 함께 지혜를 모아 불신의 고리를 끊어낼 때, 비로소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의 가치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고 신뢰받는 사법 시스템을 향한 이 여정에 따뜻한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