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6월 30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임원 선임 추인안’을 포함한 주요 안건을 처리했다. 겉으로는 정당한 절차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협회 회칙을 위반한 임원 임명을 사후에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가 된 안건은 부협회장 3인, 상임이사 2인, 이사 1인 등 총 6인의 ‘사후 추인’이다. 이들은 2025년 3월부터 협회장의 단독 결정으로 임명되어 무려 3개월 가까이 총회의 정식 선임 없이 회의에 참석하고, 표결에 참여하며, 수당까지 지급받았다. 이에 대해 집행부는 별다른 해명 없이 “관례에 따른 것”이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그러나 협회 회칙은 명확하다. 제24조 제3항은 “부협회장 및 상임이사는 협회장이 추천한 자 중에서 총회가 선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협회장에게는 단지 추천권만 있을 뿐, 실제 임명은 총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협회 운영의 민주적 정당성과 권한 견제 구조를 보장하는 핵심 절차다.
과거 한 집행부는 회무 집행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회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총회의 정식 선임 없이는 임원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는 단지 형식적 절차를 지킨 것이 아니라, 협회 운영의 민주적 정당성과 권한 분립 원칙을 수호하려는 책임 있는 태도의 표현이었다. 이는 회칙을 관례로 대체하려는 지금의 집행방식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결국 이번 사례는 일시적 행정편의가 아닌, 협회 운영 원칙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규범 위반이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중대한 법적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회칙을 위반해 임명된 임원들이 사후에 총회 추인을 받았다고 해서 그 위법성이 소급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가? 둘째, 무자격 상태로 회의에 참석해 의결하고, 수당을 수령한 행위는 사후 추인으로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는 사후 절차로 덮을 수 없는 본질적 권한 침해의 문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위법 행위를 협회 감사가 알고도 제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감사는 집행부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고 회칙의 적법한 집행을 확인하는 최후의 감시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감사는 사실상 이를 방조하거나 묵인했다.
특히 이번 사안을 통해 드러난 본질적 문제는, 그들이 과연 임원으로서 적절한 자격과 배경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회원들은 제대로 된 검증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많은 회원들은 해당 인물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집행부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이들이 협회의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회원들의 권리를 좌우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이나 의사소통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총회 절차를 무력화시켜 회원의 알 권리와 검증 권한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대한변협은 단순한 직역이익단체가 아니라, 법적 절차와 윤리적 정당성을 실천해야 할 공공성을 지닌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회칙을 위반하고 관례라는 이름으로 무리한 정당화를 시도한다면, 협회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권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관례는 규범을 대체할 수 없다. 법률가 집단의 대표조직이 자율규범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회에 준법과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잘못된 관행을 끊고, 자기규범에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법조윤리의 회복이다.
총회가 협회의 최고의결기관으로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권한이 형식적으로라도 침해되지 않도록 제도적 질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이번 사안은 단지 임원 6인의 자격 문제가 아니라, 협회 운영의 정당성과 변호사 직역의 공공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감시 기능이 마비된 상태가 지속된다면, 변협은 특정 집행부나 세력의 입김에 휘둘리는 사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법조공동체 전체가 그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박동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