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태풍 때 전신주 전선과 건물 지붕의 마찰로 화재가 발생한 경우 전신주와 전선의 관리 주체인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일부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민사2단독 권기백 부장판사는 건물 소유자가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지난 3월 19일 “피고는 원고에게 75,490,626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울산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A씨는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으로 인해 발생한 강풍으로 건물 지붕과 한전이 설치·관리하는 전선 간에 마찰이 일어나면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전소되면서 양조장 설비를 포함한 모든 재산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A씨는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송을 진행하기가 어려웠던 A씨는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법률구조를 신청했고 소송구조 결정을 받았다.
이 재판에서 한전은 “이 사건 전선이 2008년 설치된 반면, 건물은 2017년 준공돼 전선 설치 당시 이격 거리를 준수했으며, 화재 현장조사에서도 발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 사건 화재는 태풍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에 기인한 것으로 전선의 하자와 화재로 인한 손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항변을 했다.
이에 대해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화재의 원인 규명 및 전선에 대한 설치·보존상의 하자 여부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했다.
전기·전자 및 화재 조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질의응답 형식으로 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선이 건물과 지나치게 근접한 상태로 설치돼 있었으며, 이로 인해 강풍으로 인해 건물과의 접촉이 발생해 화재로 이어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 사건을 심리한 권기백 부장판사는 먼저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인한 사고는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만이 손해발생의 원인이 되는 경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가 하고의 공동원인 중 하나가 되는 이상 사고로 인하 손해는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생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2013다62602 판결 등을 인용했다.
권기백 부장판사는 전문심리위원들의 사건 분석 결과를 근거로 “전선이 건조물과 접근상태로 시설된 경우에는 해당 건조물과의 접촉에 의해 생기는 화재의 위험 등이 없도록 일정한 이격거리를 확보하여야 함에도 한전이 이러한 관리·보존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것이 이 사건 화재의 발생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권기백 부장판사는 책임범위에 대해서는 “이 사건 화재는 강풍 등의 자연력과 전선에 대한 보존상 하자가 경합해 발생한 것으로 피해 대상과 정도, 피해 확대의 원인, 피고의 전기시설물에 대한 관리의 현실적 어려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50%로 제한함이 타당하다.”면서, “위자료는 원고의 재산, 화재의 경위 및 결과, 당사자의 과실 정도, 피해, 그 밖에 여러 사정을 참작해 3천만 원으로 정한다.”라는 원고일부승소로 판결했다.
이 소송에서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유현경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통해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해 화재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시설물 설치·보존상의 하자를 입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거리의 전신주와 전선을 살펴보면 전선 간 얽힘, 건축물, 가로수 등과의 이격거리 미준수 및 접촉 사례가 빈번하게 발견되는데, 관리 주체인 한전은 정기점검 및 순시를 철저히 실시해 전신주 및 전선의 하자를 적극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화재 예방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송 1심 판결은 양 당사자가 불복하지 않아 이달 4일 그대로 확정됐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