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국가기관이 프로그램 고도화사업을 추진하면서 프로그램 접근 권한을 제공하지 않아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사업자에게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한 것은 위법·부당하다는 행정심판 결정이 나왔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계약불이행을 이유로 3개월간의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당한 A회사가 제기한 부정당업자 제재처분 취소청구 행정심판 사건에서 최근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취소한다.”는 재결을 했다고 7일 밝혔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따르면, A회사는 프로그램 고도화사업을 위한 입찰에 참가해 1순위로 낙찰된 후 발주청과 기존 프로그램을 고도화하기 위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사업에 착수한 A회사는 발주청에 기존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 권한과 개발 소스의 제공을 요청했으나, 발주청은 “기존 프로그램을 개발한 업체와 협의해 확보하라.”며, 계약 내용에 없는 요구를 하다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A회사에 3개월간의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했다.
이에 A회사는 “발주청이 기존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 권한과 개발 소스를 제공하지 않아 계약을 이행할 수 없었던 것임에도, 오히려 부정당업자 제재로 응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2024년 12월 온라인행정심판시스템을 통해 법률대리인 없이 당사자가 직접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1차 연도 입찰공고 및 계약서에 계약상대방이 기존 개발자로부터 직접 프로그램 접근 권한 등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이 없었고, 2차 연도 입찰공고는 1차 연도와 달리 기존 프로그램 개발자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새로이 부가됐으며, 2차 연도 입찰은 기존 개발업체 1곳만 단독으로 응찰해 유찰된 사정을 고려할 때, 발주청은 1차 연도 입찰공고 및 계약 시 프로그램 접근 권한에 관한 사항을 분명하게 명시했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이에 참여 위원 전원일치 의견으로 “A회사에게 계약을 이행할 수 없었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됨에도, 오히려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A회사에게 돌려 부정당업자 제재를 한 발주청의 처분은 위법·부당하다.”는 재결을 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재정경제심판과 최환영 사무관은 “이번 재결은 공공조달 계약에서 발주기관의 명확한 과업 내용 제시와 계약 이행을 위한 성실한 협조 의무를 강조한 것으로, 특히, 계약상대방의 귀책사유 없이 발주기관의 사정으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진 경우, 이를 이유로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참여 위원 만장일치 의견으로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조소영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사례는 프로그램 고도화 사업을 발주한 발주청이 해당 사업의 특수성 및 계약의 중요사항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막연하게 입찰공고를 한 후 계약을 체결해 발생한 분쟁이다.”라면서, “중앙행심위는 앞으로도 사례별 특성 및 구체적인 사실관계 등을 면밀히 검토해 억울한 권익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부정당업자 제재’는 공공발주계약에 있어 공정한 입찰 및 계약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한 사업자에 대해 일정기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특히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당한 업체는 해당 기관뿐만 아니라 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일체의 공공조달시장 입찰과 수의계약 참여가 모두 제한돼 사업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