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군사정권 시절 국가에 의한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인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국가가 1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1심 판결이 나왔지만 정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부산지방법원 민사7단독 김유신 판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A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2025. 1. 22.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1억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부터 1992년까지 내무부 훈령에 따라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인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를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는 1984년 7월경 신원불상의 5인에게 끌려가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됐고, 이후 시설 내 소대장 등으로부터 수시로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며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A씨는 약 1년 3개월 동안 불법구금과 강제노역을 겪다가 1985년 11월경 도망쳐 나왔다.
이후 A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2024년 2월 진실규명대상자로 인정됐다.
법률구조공단은 공익소송의 일환으로 A씨를 대리해 2024년 4월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이 재판에서 “내무부 훈령은 법률의 위임 없이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했고, ‘부랑인’의 정의가 추상적이고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면서, “국가가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 행위의 실상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음에도 별다른 구제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인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그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행위에 해당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사건은 과거사정리법상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및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분류돼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부산지방법원 김유신 판사는 먼저 “내무부장관이 1975. 12. 15. 발령한 ‘부랑인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내무부훈령 제410호)은 그 시행 당시의 구 대한민국헌법과 현행 대한민국헌법에서 규정한 법률유보 원칙, 과잉금지 원칙,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김유신 판사는 이어 “이 사건 훈령의 발령부터 그 적용·집행 및 형제복지원에서의 강제수용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인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그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행위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유신 판사는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는 원고측의 청구액 1억5천만 원 중 일부만 받아들여 “1. 대한민국은 원고인 A씨에게 1억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1/3은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에서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이진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국가가 공권력을 남용해 저지른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한 사례다.”라면서, “소송을 진행하면서 A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깊은 상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됐고,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받은 이번 판결이 피해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법률구조공단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소송을 돕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들 중 중위소득 125% 이하인 국민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에게 발송한 진실규명 결정통지서, -건강보험납부확인서,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하고 가까운 대한법률구조공단을 방문하면 소송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법률구조공단은 앞으로 곧 ‘법률지원단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피해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한편, 대한민국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불복해 이달 6일 항소장을 제출했고, 항소심 재판이 부산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