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임대차계약 해지 합의서에 ‘집 보러 방문 가능’이라고 기재했어도 임차인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방을 보여 줄 경우에는 주거침입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손해배상책임도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전주지방법원 민사1부(재판장 강화석 부장판사, 김진아·신서영 판사) 임차인인 A씨가 임대인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최근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B씨는 A씨에게 위자료 300만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임차인 A씨는 B씨 소유의 주택에 임대차보증금 9천만 원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거주하고 있었다. 임차인 A씨와 임대인 B씨는 2022년 7월초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기로 하면서, “2022. 7. 31.까지 임대차보증금 모두 지급. 임대차보증금 전액 지급과 동시에 주택 인도. 단 7월 중 집 보러 방문 가능.”이라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후 A씨는 거주 중 집안의 물건 배치가 달라져 있는 것을 알고 수상히 여겼는데, A씨의 동의 없이 B씨가 공인중개사에게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방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B씨의 보증금 반환 지체로 고통받고 있던 차에 이와 같은 범죄행위를 용인할 수 없어 형사고소를 했고, B씨에게는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B씨는 정식재판청구를 했으나, 전주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오히려 벌금액수를 올려 벌금 400만 원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A씨는 이 형사판결을 근거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을 방문해 법률구조를 신청했다.
법률구조공단은 소송구조 결정을 하고 A씨를 대리해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이 재판에서 “최근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A씨가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재침입 가능성, 나아가 중대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으로 크게 괴로워했으므로 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B씨가 다투지 않아 승소판결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는 B씨가 변호사를 선임해 항소했다.
B씨측은 항소심에서 “반환 약정 당시 ‘집보러 임차인 주거지 방문 가능’이라는 문구를 기재했고 당시 A씨가 이사하며 짐을 많이 빼둔 상태였으므로, 이는 사전 양해에 해당하거나 A씨가 주거지에 거주하지 않고 있다고 믿을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측은 “B씨에게 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달라고 한 사실이 있어 동의가 필요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합의서에 ‘방문가능’이라는 문구를 기재했다고 하여 동의가 있었다고 오인할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항변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전주지방법원 민사1부는 “임차인 A씨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와 B씨의 문자 대화 맥락상 짐을 다 뺐다고 한 것은 인도할 준비가 완료됐다는 취지이고, 당시 짐을 다 뺀 것은 아니므로 여전히 A씨의 주거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1.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이 법원에서 확장한 원고이 청구를 기각한다. 3. 항소제기 이후의 소송비용 중 25%는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가 부담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소송에서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김건우 변호사는 “집주인이라 하더라도 임차인이 거주 중인 경우에는 임차인의 주거에 마음대로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으로 처벌받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원활한 명도절차를 위해 형식적으로 기재한 문구만으로는 주거지 출입에 대한 사전양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법원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고, 관련 분쟁으로 고통받는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례다.”라고 말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