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밭떼기’로 불리는 포전매매를 하는 유통업자가 무 밭떼기 매매대금을 돌려달라고 윽박지르자 겁을 먹은 농민이 “돌려주겠다”고 한 말을 녹취해 제기한 매매대금반환청구소송에서 패소한 사례가 나왔다.
광주지방법원 민사2부(재판장 이흥권 부장판사, 김경중·이지영 판사)는 유통업자인 B씨가 농민인 A씨를 상대로 제기한 매매대금반환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는 전라북도에서 무 농사를 짓는 농민이고, B씨는 광주에서 농업과 농업유통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비닐하우스 시설 재배 중인 무밭 포전매매를 하는 사람이다.
B씨는 2022년 11월경 A씨의 비닐하우스 무밭을 1시간 정도 돌아다니면서 무를 직접 뽑아보고 무의 상태를 확인한 후 무를 매수하기로 하고, 당일 A씨의 계좌로 매매대금 2천만 원을 계좌이체 했다.
그런데 B씨는 2시간 뒤 갑자기 A씨의 집으로 찾아와 무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 계약을 해제하고 2천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고성으로 돈을 내놓으라며 윽박질렀고, 이에 겁을 먹은 A씨는 내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B씨는 이 대화 내용을 녹음했고 그 음성녹취를 근거로 매매계약의 해제 합의 또는 돈을 반환하기로 약정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광주지방법원에 매매대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A씨는 이 소송에 대한 도움을 받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을 방문해 법률구조를 신청했다.
법률구조공단은 이 소송에서 B씨가 유력한 증거인 대화 내용 음성녹취록을 가지고 있어 A씨에 불리하긴 했지만, 소송구조 결정을 하고 A씨를 대리해 응소했다.
법률구조공단은 이 재판에서 A씨가 돈을 돌려주겠다고 말을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말을 하게 된 경위에 관해 자세히 밝히면서, 매매계약 해제 또는 대금 반환에 관한 종국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또한, “B씨가 제출한 녹취록은 대화 중 극히 일부분만을 담고 있어 위 녹취록만을 근거로는 대금 반환에 관한 종국적인 합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소액사건으로 진행된 1심에서, 광주지방법원 박현 부장판사는 피고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측의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B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어진 항소심을 심리한 광주지방법원 민사2부도 “원고가 제출한 녹취록 중에 ‘돈을 돌려준다’는 취지의 피고 발언 부분이 있기는 하나, 위 녹취록은 두 사람의 대화 중 극히 일부분만을 담고 있어, 위 부분 녹취록만을 근거로 당사자 사이에서 매매계약 해제 또는 대금반환에 관한 종국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원고는 같은 날 현장에서 피고에게 ‘다음 날까지 2천만 원을 반환하겠다’는 취지의 확인서 작성을 요구했으나, 피고는 끝까지 작성해 주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을 종합해 원고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판시하면서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이 소송에서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구태환 변호사는 “유통업자의 부당한 요구로 고통받던 농민을 도운 사례로 이 사건에서 패소시 A씨는 2천만 원을 돌려줘야 할 뿐만 아니라 썩은 무만 남게 될까 걱정했는데 승소해 다행이다.”라면서, “돈을 주겠다는 음성녹음이 있더라도 그 발언의 전후 사정까지 따져 봐야 하는 사례로 음성녹음의 일부만으로 매매계약 해제 합의나 반환약정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로 향후 유사한 사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