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팩트 신종철 기자] 연인 관계라도 허락을 받지 않고 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안방에서 잠을 자는 행위는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A씨와 B(여)씨는 2016년 3월 직장동료로 처음 만나 후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교제하면서 결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깊은 관계였으며, 교제하는 과정에서 A씨는 B씨의 초대로 집에 방문해 식사를 하는 등 서로의 주거지에 방문하는 것이 익숙한 사이였다.
그러던 중 A씨는 직장에서 B씨와 다퉜는데 이날 B씨는 A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았고, 다음날 직장 사무실에서 마주쳤으나, B씨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B씨와 대화를 하고자 집을 방문했으나, B씨가 집에 없어서 집안에서 기다릴 생각으로 집안으로 들어가 술을 꺼내 마시고 안방에서 잠을 잤다.
B씨는 A씨를 고소했고, 검찰은 A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3월 유죄를 인정해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자 A씨는 “연인 관계에 있던 피해자(B)의 추정적 의사에 반해 주거에 침입한 것은 아니고, 기존의 연인 관계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하며, 피고인에게는 위법성의 인식도 없었으므로, 벌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인 울산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동식 부장판사)는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은 A씨의 항소를 기각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연인 사이인 피해자와 대화를 하기 위해 잠시 피해자의 주거지에 들어간 것일 뿐 다른 의도나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주거지 무단침입에 대해 피해자의 묵시적ㆍ추정적 승낙 또는 양해가 있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평소 피고인과 피해자는 연인 사이로서 서로의 주거지에 종종 왕래하기는 했으나, 이 사건 당일까지 주인이 없는 경우에도 명시적인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주거지에 임의로 들어간 적은 없었고, 피고인과 피해자가 동거하거나 장소적 생활공간을 공동으로 함으로써 사실상 각자의 주거지를 자기 집 드나들 듯이 출입하거나 주인이 없는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사전에 포괄적으로 허락하는 등의 관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더욱이 피해자는 다툼을 벌인 이후 피고인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응답을 하지 않는 등 다음날 직장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피고인의 대화 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피고인과의 다툼에 대응할 생각이었던 점, 피해자는 집에 돌아왔다가 자신의 집에 침입해 안방에서 누워 자고 있는 피고인을 발견하고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바로 집에서 나와 몸을 숨겼고, 당시 피고인은 안방에서 자다가 집에 들어오는 피해자를 보고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안방에 있다가 시간이 다소 흐른 후 피해자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등의 행동조차 하지 않은 채 귀가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범행 전후의 행동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로서는 다툼을 벌인 당일 오후에 자신이 없는 틈을 타 피고인이 주거지에 침입해 술을 꺼내 마시고 안방에서 잠을 자면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행동에 대해 피해자가 동의를 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와 원활하게 연락이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미리 집을 방문하겠다고 통지하거나 승낙을 구하려고 시도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피해자에게 전화해 집에 들어가도 되는지 묻거나 피해자의 행방, 출입문에 시정장치가 돼 있지 않은 이유 등에 관해 확인하는 등의 행위를 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에서 누워 잔 것으로 봐 피해자의 신변이 걱정되어 찾아간 것으로 보이지 않고, 당시 피고인이 반드시 피해자의 집에서 피해자를 만나야 했다거나 피해자가 부재 중인 집에서 따로 할 일이 있어서 긴급히 들어가야만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동기, 목적의 정당성, 법익균형성, 긴급성 등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형부당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심에서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라면서도 “피고인이 피해자가 없는 틈을 타 시정되지 않은 출입문으로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하고, 그곳에서 술을 먹거나 잠을 자는 등으로 피해자의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을 침해한 것으로 죄질과 범정이 가볍지 않은 점, 피고인은 진지한 반성이 부족한 점 등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합리적이고 적정한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지나치게 무거워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한편, 주거침입죄는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 주거에 들어간 행위가 거주자나 관리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감행된 것이라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2007도2595)다.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신종철 기자 master@lawfa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