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팩트 신종철 기자] 수감시설에서 이른바 ‘황제노역’의 폐해를 막기 위해 벌금 액수에 따라 노역기간의 하한을 정한 개정 형법 조항은 ‘합헌’이지만, 이 조항을 개정법 시행 이전 범죄에도 소급해 적용하도록 한 형법 부칙 조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A씨는 2012년 및 2013년 허위의 세금계산서합계표를 제출했다는 범죄사실로 2014년 6월 26일 기소됐다. 법원은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월 및 벌금 20억원에 처하고, 벌금을 납입하지 않는 경우 400만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해 확정됐다.
A씨는 재판 계속 중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 500일 이상의 노역장유치기간을 정하도록 한 형법 제70조 제2항을 위 조항의 시행일인 2014년 5월 14일 이후 최초로 공소가 제기되는 경우부터 적용하도록 한 형법 부칙 제2조 제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법원이 기각하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B씨는 2007년 허위의 매입처별세금계산서합계표 등을 작성해 정부에 제출하는 등 조세를 포탈했다는 범죄사실로 2015년 6월 11일 기소됐다. 법원은 B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 및 벌금 120억원에 처하고, 벌금을 납입하지 않는 경우 1200만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해 확정됐다.
B씨는 재판 계속 중 50억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 1000일 이상의 노역장유치기간을 정하도록 한 형법 제70조 제2항과 위 조항을 시행일 이후 최초로 공소가 제기되는 경우부터 적용하도록 한 형법 부칙 제2조 제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법원이 기각하자,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014년 5월 14일 개정된 형법 제70조(노역장유치) ②항은 “선고하는 벌금이 1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300일 이상,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500일 이상, 5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1,000일 이상의 유치기간을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소원 청구인들처럼 고액 벌금을 받고도 내지 않고 버티다가 노역장에 유치되는 경우 하루 노역 일당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달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산정돼 문제라는 지적이 일면서 개정된 것이다.
당시 개정된 형법 부칙 제2조(적용례 및 경과조치) ①항은 “제70조 제2항의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공소가 제기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0월 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1억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 노역장유치기간의 하한을 정한 형법 제70조 제2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다만 “형법 제70조 제2항을 시행일 이후 최초로 공소 제기되는 경우부터 적용하도록 한 형법 부칙 제2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위헌으로 판단했다.
먼저 노역장유치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재는 “노역장유치조항은 노역장유치가 고액 벌금의 납입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고, 1일 환형유치금액에 대한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헌재는 “벌금에 비해 노역장유치기간이 지나치게 짧게 정해지면 경제적 자력이 충분함에도 고액의 벌금 납입을 회피할 목적으로 복역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고액의 벌금 납입을 심리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역장유치기간을 정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고액 벌금에 대한 유치기간의 하한을 법률로 정해두면 1일 환형유치금액 간에 발생하는 불균형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봤다.
또 “노역장유치조항은 벌금 액수에 따라 단계별로 유치기간의 하한이 증가하도록 하고 있어 범죄의 경중이나 죄질에 따른 형평성을 도모하고 있고, 노역장유치기간의 상한이 3년인 점과 선고되는 벌금 액수를 고려하면 그 하한이 지나치게 장기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노역장유치조항은 선고되는 벌금액에 따라 노역장유치기간의 하한을 정하고 있을 뿐이므로, 법관은 그 범위 내에서 다양한 양형요소들을 고려하여 1일 환형유치금액과 노역장유치기간을 정할 수 있다”며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면 노역장유치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노역장유치는 벌금 납입시에는 집행될 여지가 없고 노역장유치로 벌금형이 대체된다는 점에서 그로 인한 불이익이 노역장유치제도의 공정성과 형평성 제고라는 공익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어 법익 균형성을 충족한다”며 “그러므로 노역장유치조항은 청구인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노역장유치조항에 대해 안창호 재판관은 “비록 노역장유치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액 벌금형의 필요적 병과규정과 결합해 다양한 비판이 있을 수 있으므로, 새로이 벌금형을 필요적으로 병과하는 규정은 신중하게 입법해야 하고 벌금형의 필요적 병과를 규정한 기존의 특별형법 조항에 대하여도 입법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보충의견을 제시했다.
◆ 형법 부칙 조항 위헌 판단 왜?
한편, 형법 부칙 조항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는 위헌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노역장유치는 벌금형에 부수적으로 부과되는 환형처분으로서, 그 실질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해 징역형과 유사한 형벌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형벌불소급원칙의 적용대상이 된다”며 “따라서 법률 개정으로 동일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게 노역장유치기간이 장기화되는 등 불이익이 가중된 때에는, 범죄행위시의 법률에 따라 유치기간을 정해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노역장유치조항은 1억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는 자에 대해 유치기간의 하한을 중하게 변경시킨 것이므로, 이 조항 시행 전에 행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범죄행위 당시에 존재했던 법률을 적용해야 한다”며 “그런데 부칙조항은 노역장유치조항의 시행 전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공소제기의 시기가 노역장유치조항의 시행 이후이면 이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이는 범죄행위 당시 보다 불이익한 법률을 소급 적용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형벌불소급원칙에 위반된다”고 위헌으로 판단했다.
부칙조항에 대해 강일원 재판판과 조용호 재판관은 별개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노역장유치조항을 소급적용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은 그리 크다고 볼 수 없다”며 “강화된 제재에 대한 경고 기능이 작동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한 행위에 대해 사후입법으로 무겁게 책임을 묻는 것은, 기존 법질서에 대한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위해 소급입법을 금지하는 정신에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법질서 전체에 대한 불신만 키울 위험이 있다. 따라서 부칙조항은 헌법상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 헌재 결정의 의의
헌재 관계자는 “이 사건 결정은 소위 ‘황제노역’과 관련해 노역장유치조항의 하한을 정한 형법 조항이 노역장유치제도의 공정성과 형평성 제고를 위한 것으로 합헌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사건 결정은, 형식적 의미의 형벌이 아니더라도 범죄행위에 따른 제재의 내용이나 실제적 효과가 형벌적 성격이 강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이에 준하는 정도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 예측 가능성 및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 형벌불소급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나아가 범죄행위에 따른 제재의 내용이나 실제적 효과가 가중되거나 부수효과가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경우에도 행위시법을 적용함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함으로써, 불이익하게 개정된 사후 입법의 소급적용에 신중을 기하도록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