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심홍걸 판사는 8월 10일 삼성반도체 등 영세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다 유방암이 발병한 50대 여성 노동자 김경순씨가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업무 중에 노출된 유해화학물질로 인해 유방암이 발병했다고 봐 산재를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심홍걸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경로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다소 비정상적인 작업환경을 갖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산화에틸렌 등 발암물질을 포함한 각종 유해화학물질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야간ㆍ연장ㆍ휴일근무를 함으로써 병이 발병했거나 자연경과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봤다.
심 판사는 “그러므로 원고의 업무와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하여는 증명책임에 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는 없다”며 근로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판결을 했다.
이 판결 이후,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은 또 다른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산재소송에서 ‘유해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직업병’의 경우에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 책임 완화”에 대해 “재확인”했다.
대법원은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상당인과관계 판단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대법원 판결의 영향으로 반도체 유방암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항소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이로서 해당 판결은 확정돼, 원고이자 재해당사자 김경순은 2012년 10월 최초로 산재(요양급여) 신청을 한지 약 5년 만에 산재 보험(요양비, 휴업급여 등)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다만, 산재 신청 후 최종 인정까지 5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암이 재발돼 또다시 힘든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고, 치료비는 또다시 본인 부담이 됐다”며 “따라서 뒤늦게나마 산재인정이 돼 보험급여 등에 대해 소급 처리되는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는 만시지탄의 행정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 대법원 확정판결의 취지에 맞게 신속히 산재인정을 내리는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하급심(1심 또는 2심)에서 산재인정 판결을 받은 노동자를 상대로 상소를 하는 잘못된 행정을 더 이상 펼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불합리한 역학조사 등을 거치느라 1~2년도 넘는 긴 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결국 불승인으로 귀결되는 잘못된 행정에서 벗어나, 신속하고 손쉽게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헙법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고 반올림은 목소리를 높였다.
반올림은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항소 포기로 인한 산재확정이 새 정부가 보여주는 직업병 산재 보상 및 예방에 대한 의지로 생각한다”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언론 보도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판례 경향을 적극 반영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도입 및 반도체, LCD직업병 발생 문제에 대한 철저한 예방대책 수립 등 약속이 꼭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참고> 2017년 9월 3일 현재 반올림의 ‘반도체 전자산업노동자 산재인정(확정)’ 현황: 22명
■ 근로복지공단에서 인정된 12명
1. 김지숙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재생불량성빈혈)
2. 고(故) 김도은(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유방암 사망)
3. 고(故) 김진기(반도체 청주공장, 백혈병 사망)
4. 고(故) 최OO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재생불량성빈혈 사망) *반올림 외 신청
5. 고(故) 박효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비호지킨림프종 사망)
6. 고(故) 이경희 (삼성반도체 기흥/화성공장, 폐암 사망)
7. 고(故) 송유경 (삼성반도체 기흥/화성공장, 폐암 사망)
8. 고(故) 이미자 (반도체, 유방암 사망)
9. 김OO (삼성반도체 기흥/화성공장, 여성 불임)
10. 오상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뇌종양)
11. 김OO (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 비호지킨 림프종)
12. 김OO (삼성LCD(현 삼성디스플레이), 천안공장, 백혈병)
■ 행정소송 제기하여 법원을 통해 인정(확정)된 10명
1. 고(故) 황유미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 2심 확정)
2. 고(故) 이OO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 2심 확정)
3. 고(故) 김OO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 2심 확정)
4. 유OO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재생불량성빈혈, 1심 확정)
5. 윤OO (삼성반도체 다발성신경염증, 1심 확정) *반올림 외 신청
6. 고(故) 이은주 (삼성반도체 난소암, 1, 2심 승소 후 공단의 상고포기로 확정)
7. 김미선 (삼성LCD 다발성경화증,1, 2심 승소 후 공단의 상고포기로 확정)
8. 이소정(가명) (삼성반도체 다발성경화증, 1심 패소, 2심 승소 후 공단의 상고포기로 확정)
9. 이희진 (삼성LCD 다발성경화증, 1,2심 패소 후 3심 대법원에서 산재인정으로 파기환송돼 산재인정 확정)
10. 김경순 (유방암, 1심 인정 후, 2017. 8.31. 공단의 항소포기로 인정 확정)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신종철 기자 desk@lawfa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