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회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약 3년 6개월간 근무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하다 1개월간 아르바이트로 잠시 일한 적이 있다고만 인정한 법인 사업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방법원 영천시법원 민사소액 1단독 김태천 부장판사는 외국인노동자 A씨가 자신이 고용돼 근무한 제조업체 B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소송에서 “B법인은 A씨에게 퇴직금 10,507,557원과 그 갚는 날까지 연 20%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국적의 불법체류 노동자인 A씨는 2019년 1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약 3년 6개월간 제조업체인 B법인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근무했다.
그런데 B법인은 A씨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A씨와 같은 불법체류 노동자에게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임금 지급도 계좌이체로 하지 않고 매월 월급봉투에 현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 왔다.
A씨는 퇴직 후 퇴직금을 지급 받지 못하자 고용노동청에 신고했는데, B법인의 대표는 A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다가, 2023년 4월 급여가 월급봉투가 아닌 계좌이체된 내역이 제시되자, 20일 정도 일을 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관할 고용노동청은 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 사건을 증거불충분 혐의없음 처분으로 종결했다.
그러자 B법인의 대표는 퇴직금 지급의무가 없다며 A씨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B법인에서 3년 6개월이나 근무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표와 사진을 찍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는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당해 황당하고 억울하다며 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신청해 소송구조 결정을 받았다.
A씨를 대리해 B법인을 상대로 임금청구소송을 제기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유현경 변호사는, 재판에서 “수사기관의 무혐의 처분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일 뿐, 민사적인 퇴직금 지급의무와 민사의 증거와 그 증명력은 형사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소송 과정에서는 B법인에 문서제출명령 신청, 관할 세무서에 과세정보제출명령 신청, 금융기관에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 신청을 통해 민사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또한 A씨가 B법인에 근무한 증거로 회식에 참여한 동영상, B회사의 대표와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 작업 내용을 촬영한 동영상 등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구지방법원 영천시법원 김태천 부장판사는 먼저 “원고의 계속 근로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 즉 근로계약서, 출근부, 급여대장, 장부 등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에 대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 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이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짚었다.
김태천 부장판사는 그러나, “피고는 2019년 11월 외국인근로자로서 불법체류자이기도 한 원고를 근로자로 채용해 기본급과 잔업 수당 등을 정산해 지급하기로 하는 근로계약을 구두로 체결한 후 피고의 작업장에서 근무하도록 한 사실, 원고의 최종 3개월분 월평균임금은 3,039,032원인 사실, 그런데 피고는 원고가 불법체류자의 신분이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서나 급여대장, 근로소득원천징수부 등 근로관계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전혀 만들지 아니한 사실, 매월 급여를 정산해 원고에게 현금을 지급하거나 합법 체류자인 동료 외국인근로자의 예금계좌에 송금하는 방식으로 급여를 지급한 사실, 원고는 피고로부터 매월 급여 정산을 하면서 교부받은 ‘급여 내역서’의 원본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고는 피고에게 고용돼 계속 근로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 피고 A씨의 소송대리인인 유현경 변호사는 “대표자가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불법체류자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근로계약서 등 객관적인 자료를 남기지 않고, 3년 6개월 이상 동고동락한 근로자를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며 부인하는 행태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현경 변호사는 이어 “수사기관은 보다 적극적인 증거수집 후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고, 수사기관에서 혐의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됐더라도 민사상 지급의무 존부 및 증거는 입증하기 나름이므로, 근로자들은 자신이 지급받지 못한 임금, 퇴직금 등에 대해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