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고령자에 대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결부된 비대면 대출에서,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에 따른 본인 확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카드사의 대출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703단독 신정민 판사는 우리카드사가 고령의 대출명의자인 A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청구소송에서 지난달 9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는 판결을 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2022년 7월말 아들을 사칭한 정체불명자의 “휴대전화가 고장나서 보험금을 청구해야 한다”는 거짓말에 속아 정체불명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링크된 원격조작프로그램을 휴대전화에 설치하고 정체불명자에게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려주게 됐다.
그러자 정체불명자는 A씨의 모바일 홈페이지에서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우리카드는 문자메시지로 본인확인을 하고, 정체불명자가 입력한 A씨 명의의 계좌에 1원 인증을 했으며, A씨의 주민등록증 기재 생년월일과 발급일자를 확인하고, 공동인증서 전자서명을 확인한 후 A씨의 예금계좌에 800만 원을 입금했다.
이후 A씨가 대출금을 변제하지 않자 우리카드는 A씨를 상대로 지급명령신청 절차를 거쳐 대여금청구소송을 진행했고, A씨는 본인의 의지에 의한 대출이 아님을 다투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신청해 소송구조 결정을 받았다.
A씨를 대리해 대여금청구소송에 대응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는 “피고는 대출 당시 만 65세를 넘긴 고령자임에도 고령자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속도로 대출 절차가 진행됐고, 본인 확인을 위해 발급된 인증서가 대출계약 절차를 진행하는 당일 발급된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원고는 피고 명의로 진행되는 대출계약이 피고 본인의 의사에 기한 것인지에 관한 의문을 품고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나, 원고는 비대면 실명확인방안 의무사항 중 일부만을 실행해 본인확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대출계약은 무효다.”라고 항변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신정민 판사는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가 ‘금융실명법’에 따른 본인확인의무 실행방법과 관련해 공동으로 마련한 ‘비대면 실명확인방안’ 의무사항 중 ④ ‘타 금융회사에 이미 개설된 기존계좌 활용 방식에 의한 확인절차’ 하나만 실시했고, 권고사항 중 ⑥ ‘타 기관 확인결과 활용’, ⑦ ‘다수의 개인정보 검증 방식에 의한 확인절차’를 추가로 진행했는바, 이는 비대면 실명확인방안에 따른 본인 확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피고측의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재판에서 A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김정우 변호사는 “비대면 대출이 활성화된 요즘 형식적인 확인만으로는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피싱범죄 수법이 날마다 진화하는 만큼 피싱범죄 예방을 위한 방법도 발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카드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항소심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8-3민사부에 배당돼 진행 중이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