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피싱범죄로 카드사의 가상계좌로 송금된 피해자의 돈이 카드대금으로 자동결제된 사건에서 예금주는 부당이득 반환의무가 없다는 1심과 2심 판결은 잘못됐다고 판단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이동원 대법관, 주심 권영준 대법관, 김상환·신숙희 대법관)는 메신저 피싱 피해자 손모씨가 카드대금 이득자 이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청구 상고심에서 이씨가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환송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23다308911)
손씨는 2021년 10월 자녀를 사칭한 성명불상의 피싱범으로부터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수리비가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고 피싱범이 안내하는 대로 특정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피싱범은 손씨의 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의 정보를 알아낸 뒤 손씨의 휴대전화에 원격조정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이씨의 계좌로 100만 원을 송금했다.
이씨의 계좌로 입금된 금액은 신한카드(주)의 카드대금으로 자동결제됐다.
뒤늦게 피해사실을 알게 된 손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법률구조를 신청하고 소송구조 결정을 받아, 신한카드(주)를 상대로 서울북부지방법원에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31단독 판사는 “해당 금원이 손씨의 피해금이라는 사실에 대해 카드사에게 악의 또는 중과실이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손씨는 피싱범으로부터 송금을 받은 이씨를 상대로 서울북부지방법원에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이씨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공시송달로 진행된 이 재판에서 1심을 담당한 서울북부지방법원 이경린 판사는 “이씨 계좌에 송금된 돈을 이씨가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2가소409023)
이씨가 모르는 사이에 입금된 돈이 카드대금으로 자동결제되었으므로 부당이득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이어진 항소심에서 손씨의 소송대리인인 김덕화 변호사는 “이씨는 자신이 사용한 카드대금 100만 원의 채무를 면제받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으나 2심 재판부인 서울북부지방법원 제2-3민사부(재판장 홍순욱 부장판사, 이영훈·조미옥 부장판사)도 판단을 바꾸지 않고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상고심 재판부인 대법원 제2부는 “피고는 자신의 신용카드대금 채무이행과 관련해 신한카드 명의의 가상계좌로 송금된 원고의 돈으로 법률상 원인 없이 위 채무를 면하는 이익을 얻었으므로 원고에게 그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면서, “이때 피고가 얻은 이익은 위 돈 자체가 아니라 위 돈이 신한카드 명의의 가상계좌로 송금되어 자신의 채무를 면하게 된 것이므로, 피고가 위 돈을 사실상 지배하였는지는 피고의 부당이득반환의무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정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 판결에는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 제1항에서 정한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잘못이 있다.”고 적시하면서, 파기환송을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했다.
손씨는 4차례의 재판을 거쳐 2년 반 만에 100만 원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판결을 받았으나, 피고 이씨의 소재가 불분명해 실제 강제집행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이 사건 1심부터 상고심에 이르기까지 손씨의 소송을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김덕화 변호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손씨의 입장에서 100만 원은 큰 돈이다. 재산명시 등을 통해 이씨의 재산이 확인되면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민법 제741조의 부당이득의 성립요건인 ‘이익’을 얻은 방법에는 제한이 없어 채무를 면하는 경우와 같이 재산의 소극적 증가도 이익에 해당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확인하면서, 피싱범죄로 송금된 돈의 사실상 지배 여부는 부당이득 반환의무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정이 아니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대법원 판결이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