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헌법재판소가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부 등에게 알리는 것을 금지한 의료법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선고하자, 의료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의료인의 태아성별고지행위 금지규정은 1987년 의료법에 도입된 지 37년 만에 폐지됐다.
헌법재판소(재판장 이종석 재판관)는 2024. 2. 28.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2022헌마356 의료법 제20조 제2항 위헌확인]
이 사건에서 태아를 임신한 임부 및 임부의 배우자들인 법무법인 상림의 정소영·황용 변호사 등은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부, 임부의 가족 등에게 고지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20조 제2항이 헌법 제10조로 보호되는 부모의 태아성별정보 접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 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 6인은 법정의견으로 먼저 “과거 성비불균형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당시에는, 형법상 낙태죄만 가지고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방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아 태아의 성 감별 및 고지 자체에 낙태의 개연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의식이 상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국민의 가치관 및 의식의 변화로 전통 유교사회의 영향인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 출산 순위별 출생성비는 모두 자연성비의 정상범위 내로서, 셋째아 이상도 자연성비의 정상범위에 도달한 2014년부터는 성별과 관련해 인위적인 개입이 있다는 뚜렷한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태아의 성별과 낙태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의 전 단계로 취급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짚었다.
아울러 “현실에서는 의료인으로부터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지만, 검찰총장의 사실조회회신에 따르면 심판대상조항을 위반한 경우 적용되는 형사처벌조항에 따라 검찰 고발 또는 송치된 건수 및 기소 건수는 10년간 한 건도 없다. 이는 심판대상조항이 행위규제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잃었고 사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출산 순위와 상관없이 출생성비가 모두 자연성비에 도달한 것은 국민의 가치관과 의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서 실효성이 없고, 그 존치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판시했다.
이종석·이은애·김형두 “성별이유 낙태가능성 여전, 태아생명보호 개선입법” 헌법불합치 의견
반면 이종석·이은애·김형두 재판관 3인은 법정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을 대안 없이 일거에 폐지하는 결과가 되므로 타당하지 않다.”면서, “입법자로 하여금 낙태죄에 관한 형법개정안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태아의 성별고지 제한 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선입법을 하도록 함으로써, 태아의 부모에 대한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에 관해 법적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낙태죄 폐지됐는데, 태아성감별금지는 존속, 모순···헌재 결정 환영”
헌재 결정 이후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021년 1월 낙태죄가 폐지됐는데 낙태 사전행위인 태아 성감별 금지는 존속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시대 변화로 입법 목적을 상실했고 현실적 의미도 잃었다.”면서, “태아성감별금지법은 폐지했어야 한다. 사실상 현실성 없는 규정이었다. 이번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