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개인택시를 타고 가던 말기 암환자가 택시기사의 실수로 발생한 교통사고로 제때 항암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에서 교통사고가 사망의 직접 원인은 아닐지라도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과 강제조정 결정이 나왔다.
전주지방법원 민사항소2-1부 고연금 부장판사는 A씨가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개인택시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최근 “전국개인택시조합연합회는 A씨에게 1,750만원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확정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의 남편인 B씨는 2020년 10월 방광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이후 수도권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2차례 항암수술을 받았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후 B씨는 부인 A씨와 함께 본가가 있는 전북 전주시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해 12월 B씨는 옮긴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택시로 귀가하던 중 택시기사의 부주의로 도로 연석을 들이받는 사고를 당했고, 이 사고로 B씨는 12주간 치료를 요하는 흉추골절상을 입어 예약된 대학병원 항암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다. B씨는 결국 교통사고 발생 50여일 만인 2021년 2월초 사망했다.
이에 B씨의 유일한 상속인인 배우자 A씨는 사고택시가 가입한 공제상품을 운영하는 전국개인택시조합연합회에 배상을 요구했으나, 배상액으로 제시된 금액은 400만 원이 전부였다.
A씨는 전국개인택시조합연합회가 제시한 금액이 피해배상금으로는 터무니없이 적다고 판단하고 대한법률구조공단을 방문해 법률구조를 신청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B씨의 사인이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은 아니지만 교통사고로 항암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점을 이유로 위자료 등 2,600여만 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피고측인 전국개인택시조합연합회는 “B씨는 교통사고가 아닌 방광암 때문에 사망한 것이며, 경미한 충돌사고에 불과한 이 사고로 흉추골절상을 입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먼저 “이 사고로 인해 B씨는 흉추 2곳이 고절돼 12주의 치료를 요하는 중대한 상해를 입었으며, 노동능력상실률 32%의 영구장해까지 가지게 됐다. 나아가 결국 적시에 항암치료를 진행하지도 못했고, 사고로 인해 신체상태가 악화돼 결국 사고 이후 2개월도 되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면서, “B씨는 두 차례의 수술을 진행하며 항암치료까지 진행해 가족과 여생을 보내고자 했으나, 이 사고로 인해 심각한 절망감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바, 피고는 B씨에게 1500만 원을 위자료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A씨)는 B씨를 간병하며 치료를 위해 전주로 내려왔다가 이런 사고로 인해 갑자기 B씨를 보내야 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전주로 내려오기로 결정한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고, 고통스러워하는 B씨를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평생 후회와 절망감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점에 비춰 피고는 원고에게 700만 원을 위자료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아울러 “교통사고 치료를 받으며 총 36일 입원한 것을 고려한 휴업손해 367만 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면서, “총 2천637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전부승소판결을 선고했다.
전국개인택시조합연합회가 1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심에서는 재판부의 강제조정으로 A씨에게 1,75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고, 양 당사자 모두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번 소송에서 A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나영현 공익법무관은 “교통사고가 사망의 직접 원인은 아닐지라도 이로 인해 암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면, 위자료 산정 시 이런 사정이 적극 반영돼야 함을 시사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