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외국 이주민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의 성·본을 혼인 중에 자신이 창설한 성·본으로 변경해 달라는 청구를 허가한 법원 결정이 나왔다.
의정부지방법원 제2가정·아동보호단독 이의진 부장판사는 베트남 이주민 여성 A씨가 아들의 성과 본의 변경허가를 청구한 사건에서 “사건본인의 성과 본을 변경할 것을 허가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의정부지방법원 2023느단164)
법원 실무상 자녀의 성·본 변경은 재혼 가정에서 계부나 양부의 성·본으로 변경을 구하거나, 이혼이나 사별 후 어머니 혼자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에서 어머니의 성·본으로 변경을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사건에서처럼 혼인 중인 부부 사이에서 자녀의 성·본을 어머니의 성·본으로 변경을 구하는 경우 이를 허가할 수 있는지에 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었다.
법원에 따르면, B씨는 한 자동차회사의 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하다 해고돼 2007년 이혼의 아픔을 겪고 8년간 해고노동자로 지내던 중, 2016년 홀로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가 베트남 국립 하노이 대학에 재학하며 호주 유학을 준비 중이던 베트남 국적의 A씨를 만나게 되었고, 그해 12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한 후 한국에 입국해 양주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2017년 6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A씨는 2018년 1월 아들을 출산한 뒤 2021년 8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2022년 9월에는 ‘H’씨에서 ‘A’씨로 창성하면서 ‘AA’로 개명했다.
B씨는 많은 나이의 자신을 배우자로 받아들이고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이주해 온 A씨에게 항상 존경심을 가지고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며 양성평등한 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B씨는 이 사건 재판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혈통인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혈통인 베트남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를 위해 사건본인이 베트남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할 수 있도록 매년 겨울방학 동안 베트남 외가를 방문해 공부하도록 하고 있고, 장차 베트남 소재 대학으로의 유학도 고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들로 하여금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게 해 대한민국에서 베트남 여성 이주민이 창설한 성·본의 후손이 대대로 이어지게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A씨도 “아들이 자신의 성·본을 따름으로써 베트남 이주민의 한국인 후손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게 하고 한국 사회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고 싶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심리한 이의진 부장판사는 결정이유에서 먼저 “자녀의 성·본 변경이 반드시 가족관계의 변동이나 새로운 가족관계의 형성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한정하도록 하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면서,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구법에서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고 규정하던 민법 제781조 제1항도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로 개정되기는 했으나, 혼인신고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의 성·본에 관해 미리 협의해 모의 성·본으로 정해 놓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비판 여론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친권자․양육자의 의사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청구대로 사건본인의 성·본 변경이 이루어질 경우 내부적으로 가족 사이의 정서적 통합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편 성·본 변경으로 인해 대외적으로 외국 이주민의 혈통임을 드러내고 또 사회의 주류 질서라고 할 부성주의에 반하는 외양이 형성돼 비우호적인 호기심과 편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이를 이유로 어머니와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존엄과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상 이익을 무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인 바, 청구인과 배우자는 가족 구성원에 관련된 편견이나 오해 등에 맞서 사건본인이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이 사건 성․본 변경을 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시했다.
이의진 부장판사는 “나아가 이 사건 청구가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돼 있는 등 성·본 변경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는 전혀 아니다.”라면서, “이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사건본인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성·본 변경을 허가함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자의 성과 본의 변경에 대해 우리 민법 제781조 제6항은 ‘자의 복리를 위해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자가 미성년자이고 법정대리인이 청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친족 또는 검사가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