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한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으면 그 내용의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규칙이 정당화될 수 없어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이 나오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에서 인정해 왔던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기하고, 새 판례를 세운 것을 환영한다.”고 했고,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부인하는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오경미)은 현대자동차 간부사원들이 현대자동차(주)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 상고심에서 11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항소심판결 중 일부를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대법원 22017다35588,35595(병합)]
대법원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주)는 전체 직원에 적용되던 구 취업규칙을 가지고 있다가, 주 5일제를 도입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일(2004. 7. 1.)에 맞추어 과장급 이상의 간부사원에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시행하면서, 구 취업규칙상의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연차휴가일수에 상한선을 규정하는 등 연월차휴가 관련 내용을 변경했다.
현대자동차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대해 간부사원 중 89%의 동의를 받았으나, 과반수 노조인 현대차노조의 동의를 받지는 않았다.
이에 박모씨 등 현대자동차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은 ‘간부사원 취업규칙’상 연월차휴가 관련 규정은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을 지급하라는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근로기준법 제94조(구 근로기준법 제97조) 제1항은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해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종래 대법원은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에 따라, 취업규칙의 작성, 변경이 그 필요성 및 내용의 양면에서 보아 그에 의해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다고 해서 효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왔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이러한 종전 판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관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할 것인지 여부였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구성 대법관 13인 중 7인의 다수의견으로 기존 판례를 변경하는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이는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를 위반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침해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무효”라면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사용자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작성·변경해 근로자에게 기존보다 불리하게 근로조건을 변경해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적용을 인정한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7인의 다수의견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대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헌법 제32조 제3항에 근거하고 근로기준법 제4조가 명시한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다. 변경되는 취업규칙 내용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종전 판례)는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명문규정에 반하고, 헌법정신과 근로기준법의 근본취지,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에 위배된다.”고 설시했다.
그러면서, “종전 판례가 들고 있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정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지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렵다. 이로 인해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계속돼 법적 불안정성이 크다.”면서, “근로조건의 유연한 조정은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 취업규칙 변경을 승인함으로써가 아닌 근로자의 동의를 구하는 사용자의 설득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다만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하여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 항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도 유효하다고 인정될 수 있다.”면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입법 취지와 절차적 권리로서 집단적 동의권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고, 근로자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를 제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에 따라 “종전 판례의 태도에 따라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부분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판단했을 뿐, 노동조합의 부동의가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하지 않은 원심판결에는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으므로 이를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조재연·안철상·이동원·노태악·천대엽·오석준 6인의 대법관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종전 판례)는 대법원이 오랜 기간 그 타당성을 인정해 적용한 것으로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는 그 판단기준이 불명확하고, 그것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와 비교해 결과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그동안 사례가 축적돼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확보돼 있고, 오랜 기간 판례 법리로 타당성을 인정받아 사회일반의 신뢰가 구축돼 있으므로, 종전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을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이 사건의 경우,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분명하게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11일 이번 판결에 대한 논평을 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에서 인정해 왔던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기하고,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그 취업규칙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새 판례를 세운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번 현대차 사건의 경우 사측이 개별동의를 근거로 근로자 집단 동의 절차를 받지 않음으로써 노조를 무력화 한 대표적 사례”라면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주관적 개념으로 뚜렷한 기준 없이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공정성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항력이 약한 개별 노동자를 움직여 노조를 무력화하고 근로조건을 개악하려는 일체의 시도가 종식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아울러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이 남용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므로, 사실상 동의권 남용으로 인정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경총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취업규칙이 불이익하게 변경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근로자집단의 동의가 없더라도 유효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동안 우리 노동법의 경직성을 다소나마 완화할 수 있는 판례법리로 자리잡아 왔다.”면서,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2007년에 관련 판례법리를 노동계약법에 명문화함으로써 유연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대법원은 다수의견으로 이와 다른 경직된 판결을 내린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다소나마 완화하고 근로조건 결정 시스템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집단적 동의’가 없어도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토록 법제도가 신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