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민유숙)은 23일 승계집행문부여에 대한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특별항고심 사건에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피상속인에게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있으면 배우자가 그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고 판단했던 기존 대법원 2013다48852 판결을 전원합의체 11대2 결정으로 약 8년 만에 변경하면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대법원 2020그42)
재산보다 채무가 더 많았던 A씨는 2015년 배우자와 4명의 자녀, 그리고 손주들을 남기고 사망했다.
앞서 2011년 B법인은 A씨를 상대로 구상금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A씨의 아내인 C씨는 상속으로 인해 취득할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상속한정승인을 했고, A씨의 자녀들은 모두 상속포기를 했다.
그러자 B법인은 확정판결을 받은 A씨의 채무가 A씨의 아내와 손주들에게 공동상속됐다는 이유로 2020년에 구상금청구소송 확정판결에 대한 승계집행문 부여신청을 통해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았다.
이에 A씨의 손주들은 자신들은 상속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다.
그러나 부산지방법원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와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되므로, 승계집행문 부여는 적법하다며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A씨의 손주들은 부산지방법원의 1심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특별항고를 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와 손자녀(또는 직계존속)가 공동상속인이 되는지,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11인 대법관의 다수의견으로 “우리 민법은 제정 당시부터 배우자 상속과 혈족 상속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상속과 관련한 배우자의 지위를 다른 상속인들과 똑같이 취급해 왔다.”면서, “민법 제1043조는 공동상속인 중에 어느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한 경우 그 사람의 상속분이 ‘다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때의 ‘다른 상속인’에는 배우자도 포함되며, 따라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그들이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귀속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반면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모두가 상속을 포기하면, 그때는 민법 제1043조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속포기의 소급효를 규정한 민법 제1042조에 따라 후순위 상속인으로서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상속인이 되고, 손자녀 이하 직계비속이 없다면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이 상속인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상속을 포기한 피상속인의 자녀들은 피상속인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천적으로 막을 목적으로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면서, “그럼에도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의사에 반하고 사회 일반의 법감정에도 반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아울러 “종래 판례에 따라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됐더라도 그 이후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다시 적법하게 상속을 포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는 실무례가 많이 발견된다.”면서, “이는 무용한 절차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결과가 된 것으로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해석함으로써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확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다수의견에 대해 이동원·노태악 대법관은 “민법은 제1019조의 특별한정승인 등 상속채무를 승계하는 상속인의 보호에 필요한 각종 특별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상속채무를 승계하는 상속인의 보호 문제가 종래 판례를 변경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종래 판례가 선고된 후 그 판결에 따라 공동상속이 이루어진다는 전제에서 오랫동안 법률관계가 형성돼 왔다. 종래 판례를 변경하는 것은 이와같이 형성된 법률관계의 안정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종래 판례는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써 상속에서 배우자의 지위 및 이에 관한 민법 제1043조의 해석론을 명확히 정립하고, 상속채무를 승계하는 상속인들이 상속에 따른 법률관계를 상속인들 의사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간명하고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