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대통령 관저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해 집회를 주최한 자를 처벌하는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에 관한 최초의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이달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앞까지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11조 개정안’은 더 이상 입법추진이 어려워져 전면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재판장 유남석 재판관, 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는 22일 청년참여연대가 제기한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금지 위헌소원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집회주최자를 처벌하는 구·현 <집시법> 조항 중 ‘대통령 관저(官邸)’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해당 법률조항은 2024. 5. 31.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2018헌바48, 2019헌가1(병합)]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청구인인 청년참여연대는 2016년 10월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노동개악, 위안부합의, 입학금문제 등을 주제로 ‘청년들이 대통령께 올리는 3대 불가 상소문 백일장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집회신고를 했다.
해당 백일장 대회는 참가예정인원이 약 30명 정도 규모로 약 1시간 가량 확성기나 현수막 없이 상소문 작성과 낭독, 시상식과 사진촬영 등의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서울종로경찰서장은 집시법이 정한 절대적 집회금지구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금지통고를 했다.
이에 청년참여연대는 서울행정법원에 집회금지통고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됐고,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 중에 금지통고의 근거가 된 구 집시법 제11조 제2호 ‘대통령 관저’ 부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8년 1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청년참여연대의 헌법소원 청구는 법무법인 이공의 허진민·양홍석·황영민·김선휴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참여했다.
또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대표인 김모씨는 2017년 8월 대통령 관저의 경계 지점 100 미터 이내인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 노상에서 옥외집회를 주최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중, 구 집시법 제11조 제2호 ‘대통령 관저’ 부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2019년 1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인 집시법 제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와 제23조(벌칙)는 누구든지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면서, 이를 위반한 주최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사건을 심리한 헌법재판소는 4년 11개월 만에 <집시법>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 이유에서 먼저 “심판대상조항은 대통령과 그 가족의 신변 안전 및 주거 평온을 확보하고, 대통령과 그 가족, 대통령 관저 직원과 관계자 등이 자유롭게 대통령 관저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원활한 직무수행을 보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면서, “이러한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대통령 관저 인근에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장소를 설정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은 대통령 관저 인근 일대를 광범위하게 집회금지장소로 설정함으로써, 집회가 금지될 필요가 없는 장소까지도 집회금지장소에 포함되게 한다.”면서,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소규모 집회의 경우,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보호되는 법익에 대해 직접적인 위협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짚었다.
헌재는 “나아가 ‘대통령 등의 안전이나 대통령 관저 출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장소’에서 ‘소규모 집회’가 열릴 경우에는,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낮아진다.”면서, “결국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에 대한 위험 상황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집회까지도 예외 없이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집시법은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집회에 대처할 수 있도록,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의 주최 금지 등 다양한 규제수단을 두고 있고,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행위 등은 형사법상의 범죄행위로서 처벌된다.”면서, “또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은 경호구역의 지정 등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고 확인했다.
헌재는 “그렇다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일부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수단들을 통하여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 따라서 막연히 폭력․불법적이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가정만을 근거로 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면서, 심판대상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국민이 집회를 통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자 하는 경우, 대통령 관저 인근은 그 의견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장소다. 따라서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한다.”면서, “심판대상조항을 통한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 보호라는 목적과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약 정도를 비교할 때,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에도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다만, “대통령 관저 인근의 집회 중 어떠한 형태의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를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이 사건 구법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대신 헌법불합치결정을 한다.”면서, 이 사건 구법조항은 이미 개정돼 향후 적용될 여지가 없지만 계속 적용을 명하는 경우에는 구체적 규범 통제의 실효성이 보장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사건 구법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그 적용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 사건 현행법조항에 대해서도, “이 사건 구법조항과 내용이 같으므로, 이 사건 현행법조항에 대해서도 위헌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현행법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해 그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 보호에 관한 법적 공백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면서, 따라서 “이 사건 현행법조항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2024. 5. 31.을 시한으로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이를 적용하도록 한다.”고 설시했다.
이에 대해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정의견과 결론을 같이 하면서도,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이유에 대해 ‘대통령 관저(官邸)’의 해석을 명시하고 그 해석을 토대로 위헌이라는 점을 논증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에 대해서는 ‘관저(官邸)’라는 용어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에 대해서 ‘공관’이라는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때 ‘관저(官邸)’는 생활공간 및 직무수행 장소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공관’은 주로 생활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고, 심판대상조항의 ‘대통령 관저(官邸)’는 협의의 대통령 관저(숙소)와 집무실 등 대통령 등의 직무수행 장소를 포함하는 광의의 대통령 관저를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심판대상조항은 ‘광의의 대통령 관저’ 인근의 모든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하는바, 이는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으로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별개의견을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앞서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인근(헌재 2000헌바67 등)에서의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 국회의사당 인근(헌재 2013헌바322 등), 국무총리 공관 인근(헌재 2015헌가28 등), 각급 법원 인근(헌재 2018헌바137)에서의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각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은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이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집회를 금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대통령 관저 인근의 모든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함으로써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상충하는 법익 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으므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헌재 결정이 나오자, “집시법 11조의 위헌성이 재차 확인된 만큼 입법기관인 국회가 위헌성을 제거하기 위한 입법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민주적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수요소인 집회의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고, 무엇보다 절대적 집회금지는 모든 다른 가능한 제한수단을 다 소진한 후 최후에,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재결정의 취지를 살리는 입법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