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검찰이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수사와 관련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변호인이 소속된 법무법인(유) 태평양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변협회장선거 후보자들이 국가기관에 의한 변호인의 비밀유지권 침해라며 규탄하고 나섰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는 먼저 15일 성명을 내고 “검찰이 지난 13일 법무법인을 상대로 진행한 압수수색이 변호인의 비밀유지권(ACP)과 헌법상 변호인 조력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임을 천명하며, 이에 대한 규탄의 뜻을 밝힌다.”면서, “특히, 아직 공판이 진행 중인 사안과 관련해 그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짐으로써 변론권의 위축이 초래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변호사회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상담 및 조언 내용이 모두 비밀로 지켜져야만 한다.”면서, “변호사와 의뢰인 간 신뢰가 보장되고 이를 바탕으로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진실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만, 보다 충실하고 효과적인 변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은 헌법상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온전하게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요구된다.”고 짚었다.
이어 “그런데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고, 비밀유지 ‘권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서, “그 결과, 수사기관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의사교환 내용들을 강압적으로 수집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음에도, 변호사로서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검찰과 이를 발부하는 법원이 모두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사태가 반복적으로 초래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변호사회는 “이번 사안과 같이 수사기관과 법원에 의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침해가 계속될 경우,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진실된 의사교환을 전제로 한 변론전략 수립 및 재판대응이 크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면서, “아울러,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압박수단으로 작용함으로써 변호사의 변론권을 크게 위축시킬 수도 있다. 이는 결국 헌법상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며, 우리 사법제도 발전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서울변호사회는 아울러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보장은 비단 재판 및 수사단계에서뿐만 아니라, 기업의 준법감시 업무 활성화 및 준법경영 발전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면서, “기업 내에서도 비밀유지권의 보장을 통해 규제기관의 강제제출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게 되면, 사내변호사의 법률자문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기업의 준법수준 향상과 기업범죄 예방이라는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변호사회에 따르면, 실제로 36개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34개 회원국이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인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에서는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법적 조언(legal advice)을 포함한 의사교환(communication)’이라는 요건을 충족하면 변호인 비닉특권(ACP)을 인정받고 압수수색을 거부할 수 있고, 프랑스는 변호사의 비밀유지제도가 변호사 윤리와 결부돼 발전함으로써 변호사회가 그 규율에 관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보장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2020년에 조응천 의원 대표발의, 2022년에는 황운하 의원 대표발의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신설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도입의 필요성을 주창해 왔고, 변호사법 개정안 발의 과정에서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전문위원 등을 찾아다니며 비밀유지권 도입의 필요성과 해외 입법례 등을 설명하면서 적극적인 설득 작업을 펼쳐왔다.”면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이 명문화되고,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을 이어갈 것이다. 나아가, 부당한 변론권 침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변호사의 변론권과 국민들의 변호인 조력권이 보다 두텁게 보장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52대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규탄 성명을 냈다.
기호 3번인 박종흔(56세) 법무법인 신우 변호사는 “변협회장 임기말 시점에 기습적으로 진행된 법무법인의 위헌적인 압수수색에 대해 변협회장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관련 후속절차를 전국 3만3천명 변호사들과 연대해 진행할 것임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기호 2번 안병희(60세)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검찰의 법무법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변호사와 의사교환 내용 등이 공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으로써, 궁극적으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당선 후 변호인 및 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의 재발 시 담당검사에 대한 징계까지 공문으로 요구해 변호인의 조력권을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겠다. 뿐만아니라 신속하게 (변호사법) 개정안의 통과에 힘써 해당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기호 1번 김영훈(58세) 법무법인 서우 변호사도 “법무법인을 압수수색하면 사법절차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되고, 법조3륜이 상호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구조가 형해화 돼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처사로 규탄 받아 마땅하다.”면서, “국민과 변호인의 권리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법을 개정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비밀유지권을 명문화 할 것”을 주장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