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도의원과 시의원 등 현직 지방의회의원들도 후원회를 설치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헌법재판소(재판장 유남석 재판관, 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는 24일 강용구 전 전라북도의회 의원 등이 청구한 정치자금법 제6조 등 위헌확인 사건에서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국회의원을 후원회 지정권자로 정하면서 ‘지방의회의원’을 후원회 지정권자에서 제외하고 있는 정치자금법조항은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면서 2024. 5.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헌법재판소 2022. 11. 24. 선고 2019헌마528, 631, 632, 655(병합)]
2018. 6. 13. 실시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도’의회의원과 ‘시’의회의원으로 당선돼 2018. 7. 1.부터 임기를 개시한 강용구 전라북도의회 의원 등은 “지방의회의원을 후원회 지정권자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는 정치자금법 제6조 등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9년 5월과 6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국회의원을 후원회지정권자로 정하면서, ‘도’의회의원과 ‘시’의회의원을 후원회지정권자에서 제외하고 있는 정치자금법 제6조 제2호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00. 6. 1. 99헌마576 결정에서 국회의원·국회의원입후보등록자는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면서, 서울특별시·광역시·도의회의원은 후원회를 둘 수 없도록 한 구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조항에 관해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었지만, 이번에는 판단을 달리했다.
헌법재판관 7인의 다수의견은 먼저 “후원회 제도는 유권자 스스로 정치인을 후원하도록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고 후원회 활동을 통해 후원회 또는 후원회원이 지향하는 정책적 의지가 보다 효율적으로 구현되도록 하며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라면서, “1980년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이 전부개정되면서 후원회 제도가 도입된 이래 후원회지정권자의 범위는 계속 확대돼 왔고, 그에 따라 정치자금의 투명성도 크게 제고됐다.”고 짚었다.
헌재는 이어 “지방의회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지방의회의원의 역할도 증대됐는데, 지방의회의원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원활한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의원들에게도 후원회를 허용해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면서, “지방의회의원은 주민의 대표자이자 지방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주민들의 다양한 의사와 이해관계를 통합해 지방자치단체의 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므로, 이들에게 후원회를 허용하는 것은 후원회 제도의 입법목적과 철학적 기초에 부합한다.”고 설시했다.
헌재는 “정치자금법은 후원회의 투명한 운영을 위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지방의회의원의 염결성은 이러한 규정을 통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국회의원과 소요되는 정치자금의 차이도 후원 한도를 제한하는 등의 방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후원회 지정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지방의회의원의 정치자금 모금을 음성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현재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의정활동비 등은 의정활동에 전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또한, 지방의회는 유능한 신인정치인의 유입 통로가 되므로, 지방의회의원에게 후원회를 지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정치입문을 저해할 수도 있다.”면서, “따라서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심판대상조항이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의회의원을 후원회지정권자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로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이에 “종전에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개정 전 조항에 대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헌재 2000. 6. 1. 99헌마576 결정은 이 결정 취지와 저촉되는 범위 안에서 변경한다.”고 밝히고,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해 그 효력을 상실시키게 되면 국회의원 역시 후원회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사라지게 되므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선고하는 대신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한다. 입법자는 2024. 5. 31.까지 개선입법을 해야 하고, 이 조항은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과 잠정적용 명령’을 선고했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후원회 제도는 사회구성원들의 자발적 정치참여의식을 높여 유권자 스스로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도록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고 정치자금을 양성화하기 위한 것으로, 후원회지정권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의 문제는 입법자가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으로서 광범위한 입법재량 내지 형성의 자유가 인정되는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치자금법이 선거와 무관한 후원회 설치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과거 수차례 불법적 정치자금의 폐해를 겪었던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임기를 개시한 현직 정치인에게 후원회 설치를 인정하게 되면 현직자에게 후원금이 집중돼 다음 선거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을 보장할 수 없고 소수의 고액 기부자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적인 유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은 모두 정치활동의 주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지위나 성격, 기능, 활동범위, 정치적 역할 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면서, “지방의회의원은 소요되는 정치자금이 국회의원에 비해 적고, 지방자치법에 따라 의정활동비, 여비, 월정수당 등을 지급받고 있으므로, 지방의회의원에게 후원회의 설치 및 운영을 허용할 필요는 크지 않다.”고 봤다.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만약 지방의회의원에게 후원회의 설치 및 운영을 허용하게 된다면, 대가성 후원으로 인한 비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후원회 난립으로 인한 지역적 혼란이 야기되거나 주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위험이 있다. 또한, 지방의회의원은 국회의원에 비해 그 수가 훨씬 많아 정치자금법상 후원회에 관한 규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효과적인 통제도 어려울 수 있다.”면서,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선거와 무관하게 후원회를 설치·운영할 수 있는 자를 국회의원으로 한정하고 지방의회의원을 제외한 것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므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기존 선례의 입장을 변경한 것이라면서, “후원회가 정치에 대한 참여와 신뢰를 높이고 정치자금의 투명성 제고와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정치입문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광역자치단체의 ‘도’의회의원과 기초자치단체의 ‘시’의회의원들에게도 후원회의 설치 및 운영을 허용할 필요를 인정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