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고교 동창이 사기로 구속됐던 사실을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다른 동창들에게 알린 행위는 '비방할 목적'을 인정하기 어려워 정보통신망법 상의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정희 대법관, 주심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2도4171 판결)
A와 같은 예술고등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동창 B는 A와 다른 동창 친구에게 자신의 자력을 속이는 방법으로 기망해 A의 신용카드로 5천만 원, 다른 동창 친구의 신용카드로 4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각각 결제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행위로 2016년 7월경 구속됐고, 2017년 1월경 형사재판에서 사기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은 후 석방됐다.
A는 2019년 1월 초 고등학교 동창생 10여 명이 참여하고 있던 인터넷 메신저 채팅방에 친구의 초대로 참여했다가 B도 있다는 것을 알고 B를 제외하고 다른 동창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채팅방을 만들어 “B가 내 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감방에서 몇 개월 살다가 나왔다. 집에서도 포기한 애다. 너희들도 조심해라.”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후 곧바로 채팅방에서 나갔다.
B는 당시 채팅방에 참여한 다른 동창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듣고 2020년 9월 A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A는 경찰에서 글을 올린 이유에 관해 “B씨가 람보르기니 등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허영을 부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면서, "한편으로는 저의 경우처럼 동창생 중 B와 금전거래를 하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까봐서 ‘너희들도 피해자와 돈거래를 하지 마라.’라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항소심을 심리한 대구지방법원 재판부는 피고인 A에게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서 정한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면서 A에 대해 유죄로 인정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A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고,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 상고심을 심리한 대법원 제3부는 먼저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 따른 범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공공연하게 드러낸 사실이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릴 만한 것임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는 피고인이 드러낸 사실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릴 만한 것인지와 별개의 구성요건으로서, 드러낸 사실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해서 비방할 목적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규정에서 정한 모든 구성요건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대법원 2020도11471 판결을 인용했다.
대법원 제3부는 구체적으로 “피고인은 채팅방에 참여한 동창들에게 ‘너희들도 조심해라.’라고 주의를 당부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다른 동창들의 피해를 예방하려는 동기로 공소사실 기재 행위를 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한다.”면서, “게다가 피해자가 과거에 피고인을 포함해 같은 고등학교 동창 친구 2명을 상대로 사기 범행을 했으므로, 그 범행의 피해자였던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와 다른 동창들이 교류하는 장면을 보고는 다른 동창들에게 피해자에 대한 주의를 당부할 만한 동기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이 사건 게시 글을 채팅방에 올린 동기나 목적에는 자신에게 재산적 피해를 준 피해자를 비난하려는 목적도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피해자로 인해 고등학교 동창 2명이 재산적 피해를 입은 사실에 기초해 피해자와 교류 중인 다른 동창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려는 목적이 포함돼 있고, 실제로 피고인이 이 사건 게시 글의 말미에 그러한 목적을 표시했다.”면서, “따라서 피고인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법원 제3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면서, 원심판결에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서 정한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