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성희롱 징계대상자가 징계사유의 구체적 내용과 피해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징계절차에서 피해자의 실명 등 구체적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아도 징계대상자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된다고 볼 수 없어 해임징계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조재연 대법관, 주심 이동원 대법관, 민유숙·천대엽 대법관)는 해임된 제주지방검찰청 직원인 고모씨가 검찰총장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의 항소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2두33323)
고씨는 제주지검 직원으로 재직 중 직장동료인 다수의 여직원들에게 수차례 성희롱이나 언어폭력 등을 가했다는 등의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징계사유로 2019년 5월 해임됐다.
이에 고씨는 소청심사위원회에 징계취소를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서울행정법원에 검찰총장을 상대로 해임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징계사유가 상당 부분 인정되고 징계양정도 적정하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에 고씨는 불복하면서 항소했다.
그런데 항소심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는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사건에서 피고인의 반대신문 없이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증거로 채택하는 성폭력처벌법조항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아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2018헌바524)을 인용하면서, "상대적으로 훨씬 두터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성년 피해자가 문제된 사건에서조차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적 차원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피고가 제출한 진술서 등 관계 서류에 피해자 등의 실명이 지워져 있거나 영문자로 대체돼 기재돼 있는 등 피해자 및 목격자 등이 특정되지 않아 징계 절차 및 이를 다투는 소송절차에서 반대신문을 통해 피해자 진술을 탄핵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 이로서 원고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으로 지장이 초래됐으므로 이 사건 처분은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찰총장이 불복하면서 상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해임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는지 유무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항소심 판결과 달랐다.
이 사건 상고심을 심리한 대법원 제2부는 먼저 “성비위행위의 경우 각 행위가 이루어진 상황에 따라 그 행위의 의미와 피해자가 느끼는 불쾌감 등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징계대상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각 행위의 일시, 장소, 상대방, 행위 유형 및 구체적 상황이 다른 행위들과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돼야 함이 원칙(대법원 2021두50642)이다."라면서도, "그러나 각 징계혐의사실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돼 있고, 징계대상자가 징계사유의 구체적인 내용과 피해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인정될 때는 징계대상자에게 피해자의 ‘실명’ 등 구체적인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징계대상자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된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성희롱 피해자는 2차 피해 등의 우려가 있어 실명 등 구체적 인적사항 공개에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설시했다.
이어 “이 사건 징계혐의사실은 원고가 직장동료인 제주지방검찰청 여직원 다수를 상대로 수차례 성희롱이나 언어폭력 등을 가했다는 것으로, 징계처분 관계 서류에 피해자 등의 실명이 기재돼 있지 않지만, 각 징계혐의사실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각 행위의 일시, 장소, 상대방, 행위 유형 및 구체적 상황이 특정돼 있다.”면서, “또 원고가 이 사건 처분 과정에서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받아 각 징계혐의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진술했고, 당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취지의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원고가 퇴직한 피해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 전원으로부터 선처를 구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받아 소청심사절차에 제출한 사정에 비추어 각 징계혐의사실의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처분의 관계 서류에 피해자 등의 실명 등 구체적 인적사항이 기재돼 있지 않지만 원고가 각 징계혐의사실에 대해 반박하거나 소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았다.”고 적시했다.
대법원은 “원고는 이 사건 처분 절차, 소청심사 절차 및 제1심 소송절차에 이르기까지도 ‘피해자 등의 실명이 특정되지 않아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초래됐다’는 취지로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심에서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이 사건 징계혐의사실에 피해자로 등장하는 동료들이 누군지 알고 있으며, 이들에게 다가가 적극적으로 사죄하고 탄원서 등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에 “이 사건 징계혐의사실과 관련된 피해자 등이 특정됐다고 볼 여지가 많고, 따라서 징계절차상 원고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지장이 초래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원고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돼 이 사건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징계처분의 절차상 하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