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대법원이 위약벌의 약정은 채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정하는 것으로서 손해배상액의 예정과는 그 내용이 다르므로 감액할 수 없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구성원 13인 중 6인의 대법관들이 기존 판례를 변경해 위약벌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해 감액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7인의 대법관 다수의견은 현재의 판례는 타당하고 그 법리에 따라 거래계의 현실이 정착됐다고 할 수 있으므로 판례변경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골프연습장 건물을 제공한 A사가 연습장 시설을 설치한 B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B사의 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A사와 B사는 2014년 5월 A사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건물 9층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B사는 자신의 비용으로 그곳에 골프연습장 시설을 설치해 10년 간 운영하면서 그 수익을 1/2씩 나누어 갖기로 하는 공동사업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공동사업계약서 제11조에 ‘손해배상금과는 별도로 의무사항에 대해 불이행 시 별도의 10억 원을 의무 불이행한 쪽에서 지불해야 한다.’라고 약정했다.
이후 A사는 운영주체 및 운영기간 등에 관한 공동사업계약의 변경을 요구했으나 B사가 이를 거절하자, A사는 2014년 10월 골프연습장 시설공사를 진행하던 B사에 대해 공사현장의 인터넷 등 통신을 제한하고 공사진행 등을 방해하는 분쟁이 발생했다.
이에 B사는 2014년 10월말경 시설공사를 중단했고, 양사는 각각 상대방의 귀책사유로 공동사업계약을 해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본소와 반소로 계약상 위약금 10억 원을 청구했다.
1심인 서울남부지방법원 재판부는 A사의 귀책사유가 인정되고 위약금 약정을 위약벌이라고 판단하면서 감액을 인정하지 않은 채 10억 원의 반소청구를 인용하면서 B사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위약벌인 10억 원의 감액을 인정하지 않고 A사의 손해배상채권과의 상계만 인정하면서 B사 일부승소 판결했다.
위약벌 감액을 인정하지 않고 10억 원 전액을 인정한 내용은 1심과 2심 판단이 동일했다.
상고심의 주요 쟁점은 위약벌이 민법 제398조 제2항의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다르므로 동조항을 유추적용해 감액할 수 없다는 현재의 판례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였다.
민법 제398조(배상액의 예정)
① 당사자는 채무불이행에 관한 손해배상액을 예정할 수 있다.
②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
③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이행의 청구나 계약의 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④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
⑤ 당사자가 금전이 아닌 것으로써 손해의 배상에 충당할 것을 예정한 경우에도 전4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7명)은 현재 판례가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위약벌은 의무위반에 대한 제재벌로서 위반자가 상대방에게 지급하기로 자율적으로 약정한 것이므로,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들의 의사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면서, “위약벌에 대한 법원의 개입을 넓게 인정할수록 위약벌의 이행확보적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원의 개입을 쉽게 허용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민법이 손해배상액 예정과 달리 위약벌에 대한 감액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입법자의 결단으로서 법률의 흠결이라고 볼 수 없고, 대법원은 공서양속 위반을 이유로 전부 또는 일부 무효의 법리에 따라 위약벌을 통제하는 법리를 확립해 공평을 기하고 있다.”면서, “이 사건 위약금 약정은 위약벌에 해당하므로 위약금 10억 원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해 감액할 수 없다.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에 위약금의 감액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김재형·박정화·안철상·이흥구·천대엽·오경미 6인의 대법관은 위약벌의 감액에 관해 손해배상액의 예정 규정을 유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은 기능적으로 유사하고, 대법원은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성격을 함께 가지는 위약금을 인정하거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의 적용 국면에서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을 구별하지 않는 등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경계를 완화해 왔다.”면서, “공서양속 위반을 이유로 무효로 하는 것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판례의 태도에 따르면, 위약벌인지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에 따라 심한 불균형과 평가모순이 발생한다. 배상적 기능을 갖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대해서 감액을 인정하면서 오히려 제재적 기능을 갖는 위약벌에 대해서 감액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비추어 평가모순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서양속 위반으로 위약벌의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로 된다는 판례는, 손해배상액 예정에 대한 감액을 인정하지 않는 구 일본 민법에 특유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온 법리이고, 대륙법계에서는 대체로 위약벌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그 감액을 인정하고 있고, 영국이나 미국 등 보통법계에서는 위약벌을 아예 무효로 보고 있다. 따라서 비교법적으로도 위약벌에 대한 감액을 인정하는 것이 균형 잡힌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다수의견에 반대했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 관계자는 이번 판결의 의의로 “대법원은 현재 판례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이를 유지했다.”면서, “위약벌은 원칙적으로 감액할 수 없고 손해배상예정금은 감액할 수 있으며, 위약벌은 손해배상예정금의 성격을 함께 갖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감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