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일반 유권자가 선거운동 기간 중 어깨띠와 모양·색상이 동일한 모자·옷, 표찰·수기·마스코트·소품, 그 밖의 표시물을 사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한 공직선거법 규정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제68조가 규정하는 어깨띠 등 표시물을 사용한 선거운동의 금지와 관련한 최초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재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는 21일 <공직선거법> 제68조 제2항 및 제255조 제1항 제5호 중 ‘제68조 제2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된 '표시물 사용 선거운동 금지' 위헌법률제청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헌법재판소 2017헌가4)
2016년 4월 당시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였던 현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산단원갑 국회의원의 아버지인 고덕진씨는 고영인 후보자의 성명과 소속 정당이 기재된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했다는 공소사실로 2016년 9월 기소됐다.(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16고합290)
이 사건을 심리하던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제2형사부는 2017년 1월 <공직선거법> 제255조 제1항 제5호 중 ‘제68조 제2항을 위반해 어깨띠, 모자나 옷, 표찰·수기·마스코트·소품, 그 밖의 표시물을 사용해 선거운동을 한 사람’ 부분에 대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공직선거법> 제68조(어깨띠 등 소품) 제2항은 “후보자와 그 배우자(배우자 대신 후보자가 그의 직계존비속 중에서 신고한 1인을 포함한다),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활동보조인 및 회계책임자를 제외하고는 선거운동 기간 중 어깨띠, 모양과 색상이 동일한 모자나 옷, 표찰·수기·마스코트·소품, 그 밖의 표시물을 사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청법원인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위헌제청 이유로 “심판대상조항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없는 정치적 표현까지 모두 형사처벌해 그 규제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과도한 선거비용 지출에 따른 선거운동 과정의 경제적 불평등은 선거비용지출 제한규정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면서, “유권자들의 정치적 표현을 후보자의 경제력 차이를 이유로 규제하는 것은 합리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접수한 헌법재판소는 법제처장, 중앙선관위원장, 국회의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 이해관계기관 등의 의견을 취합해 관련 사건들과 함께 검토해 5년 6개월여만에 결론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결정 이유에서 먼저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헌법상 지위와 성격, 선거의 공정성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볼 때, 입법자는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선거 국면에서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입법목적 달성과의 관련성이 구체적이고 명백한 범위 내에서 가장 최소한의 제한에 그치는 수단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선거운동 등에 대한 제한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표현의 자유의 규제에 관한 판단기준으로서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나 사회 통념상 적은 비용으로 제작한 물건에 후보자나 정당의 명칭을 기재해 통상적인 방법으로 붙이거나 입거나 지니고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등에는 경제력의 차이로 인한 기회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고, 표시물의 가액과 종류, 크기, 규격, 수량, 사용 방법 등을 제한하는 수단을 사용하면, 일반 유권자의 표시물을 사용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경제력 차이로 인한 기회 불균형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으며, 후보자나 유권자의 경제력을 이용한 세력의 과시는 공직선거법상 선거비용 제한·보전 및 기부행위 금지 등 규정에 의해 방지될 수 있다.”고 설시했다.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금지나 허위사실공표 금지 규정 등이 이미 존재함에 비추어 보면, 심판대상조항이 선거의 과열로 인한 무분별한 흑색선전, 허위사실유포나 비방 등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이를 종합하면, 심판대상조항은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표시물을 사용한 선거운동을 포괄적으로 금지·처벌하는 것으로서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일반 유권자나 후보자가 받게 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매우 중대하다. 한편, 심판대상조항은 선거에서의 기회균등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는 정치적 표현까지 금지·처벌하고 있고, 이러한 범위 내에서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이 그보다 중대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에도 위배된다.”면서,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하게 되면, 표시물을 사용하는 선거운동을 모두 규제할 수 없게 되는 법적 공백이 발생하고, 정치적 표현 행위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허용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선거의 공정성과 우리의 선거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대신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입법자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개선입법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2023. 7. 31.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판대상조항은 2023. 8 . 1.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누구든지 선거운동기간 중 어깨띠 등 표시물을 사용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선거에서의 기회 균등 및 선거의 공정성에 구체적인 해악을 발생시키는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는 정치적 표현까지 금지하는 것으로서 과도하게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후보자와 그 관계자는 물론 일반 유권자의 선거와 관련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국민주권 행사의 일환이자 민주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