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2012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발생한 전자발찌범 서진환의 주부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2013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9년만에 나왔다.
대법원 제1부(재판장 김선수 대법관, 주심 오경미 대법관, 박정화·노태악 대법관)는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 피해자의 남편 A씨와 미성년자인 자녀 두 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항소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2. 7. 14. 선고 2017다290538)
이 사건의 피해자는 2012년 8월 20일 오전 9시 20분경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자택에서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 전과자인 서진환의 강간 시도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살해됐다.
서진환은 사건 당시 과도와 테이프 등을 준비하고 중곡동 주택가를 배회하며 강간범행 대상을 물색하다가 피해자를 발견하고 집에 침입해 강간을 시도했다. 이후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고 피해자가 현관문 쪽으로 도망가자 미리 준비한 과도로 피해자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서진환은 2004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 법률>위반(특수강도강간 등) 등의 범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형 집행 종료를 앞두고 구 <특정범죄자에대한 위치추적전자장치부착등에관한 법률>(전자장치부착법)에 따라 7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을 명하는 결정을 받았고, 2011년 11월 9일 형 집행을 종료하면서 전자장치를 부착했다.
서진환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13일 전인 2012년 8월 7일 오전 11시 30분경 거주지 근처인 서울 중랑구 부근에서 여성 C씨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간 다음 미리 준비한 과도로 위협하고 운동화 끈으로 피해자의 손목을 묶고 강간했다.
이후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범인의 음모 등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정을 의뢰했고 서진환을 포함한 인근 지역 우범자들의 사진을 C씨에게 제시해 범인을 지목하도록 했으며 범행 장소 주변 CCTV 녹화자료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 그러나 범인이 서진환이라는 단서는 찾지 못했다.
문제는 경찰이 당시 범행 장소에 접근한 전자장치 피부착자가 있는지 위치정보를 조회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 피해자가 살해되고 서진환을 체포하고 나서야 서진환이 전자장치 피부착자임을 알게 돼 2012년 8월 22일 비로소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에 직전 범행 무렵 범행 장소 근처에 전자장치 피부착자가 존재했는지 조회했고,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는 직전 범행 무렵(2012년 8월 7일 오전 10시~오후 1시) 범행 장소 반경 300m 이내에 전자장치 피부착자가 있었음을 회신했다. 이후 직전 범행의 현장에서 채취된 범인의 DNA가 서진환의 DNA와 일치함이 밝혀졌고, 서진환은 직전 범행 역시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인정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경찰관 및 보호관찰관의 직무 수행 문제와 서진환의 범행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어진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는 먼저 “직전 범행의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관은 범인 검거를 위해서 피해자의 진술 확보, 현장 감식을 통한 DNA 채취와 감정 의뢰, 현장 주변의 CCTV 열람, 탐문과 잠복 등을 통한 거동 수상자 조사 등 일반적인 수사 방법에 따른 모든 조치를 했으므로 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정보를 조회·활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러한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서진환의 담당 보호관찰관이 일정 기간 서진환에 대한 대면접촉을 소홀히 하고 법무부 지침에 따른 일일감독 소견의 입력을 지연한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 보호관찰관들의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그 외에도 이 사건 범행의 발생과 관련된 경찰관과 보호관찰관의 직무수행은 다소 미흡한 사정이 있지만 국가배상책임을 져야 할 정도로 객관적 정당성이 결여돼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5년간 상고심을 심리한 대법원 제1부의 결론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는 먼저 경찰관들의 직무수행에 대해 “서진환의 직전 범행은 대낮에 주거지에 침입해 부녀자를 위협하고 운동화 끈으로 손목을 묶어 반항을 억압한 후 강간한 대담하고도 흉악한 수법의 범행”이라면서, “이러한 직전 범행을 수사하게 된 경찰관으로서는 성폭력범죄의 습벽을 가진 자가 행한 범행이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으므로 직전 범행 장소 인근의 성폭력범죄의 전력이 있는 사람 등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우선 수사대상자로 보아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기본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전자장치 피부착자는 강한 재범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돼 전자장치를 신체에 부착해 국가기관의 감시 대상이 된 사람이므로, 위와 같은 특수성을 가진 직전 범행을 수사하는 경찰관으로서는 직전 범행 당시 범행 장소 근처에 있었던 전자장치 피부착자가 직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신원을 확보해 수사대상자로 삼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는 직전 범행의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면서, “직전 범행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정보 확보는 가장 효과적인 수사방법일 수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전자감시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성폭력범죄자의 재범의 위험을 배제함으로써 성폭력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것에 대한 강한 사회적 요구도 있었다. 담당 경찰관으로서는 이를 선택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제1부는 보호관찰관들의 직무수행에 대해서도 “며칠 사이에 벌어진 직전 범행과 이 사건 범행을 보듯이 서진환은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사람으로 재범위험성평가 순위가 서울보호관찰소 관내 보호관찰대상자 1,165명 중 9위에 해당할 정도로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높게 평가됐고, 평소 담당 보호관찰관에게 소급입법에 따라 전자장치를 부착하게 된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 2012. 6. 20. 담당 보호관찰관과의 면담 과정에서 “사람을 칼로 찌 르거나 성폭력을 하는 등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등 강한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면서, “이처럼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서진환을 담당하는 보호관찰관으로서는 행동 관찰 결과 그의 강한 반사회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포착한 상황에서 재범에 나아가지 않도록 잘 관찰하고 그의 특성에 맞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서진환은 담당 보호관찰관이 자신을 대면접촉하지 않던 기간에 불과 13일의 시차를 두고 직전 범행과 이 사건 범행을 연달아 저질렀다. 이는 보호관찰관들이 대면접촉을 소홀히 해 서진환의 재범가능성을 억제하지 못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정황이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제1부는 “피고 소속 경찰관과 보호관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은 이 사건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크다.”면서, “직전 범행의 담당 경찰관이 자신의 직무상 의무를 다해 전자장치 위치정보를 조회했다면 신속히 서진환을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자장치 피부착자인 서진환이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과 함께 자신의 위치정보가 전자장치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해 감시되고 있음을 인식했다면 이 사건 범행처럼 대담한 범행을 연달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담당 보호관찰관이 수시의 대면접촉 등을 통해 서진환을 지속적으로 지도·감독했다면 서진환도 국가기관으로부터 계속 관찰을 받고 있다고 인식해 함부로 재범으로 나아갈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설시했다.
대법원 제1부는 이에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 소속 경찰관과 보호관찰관의 직무수행이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하지 않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법령 위반’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한다.”면서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 피해자 유족들을 대리해 공익사건으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유) 지평의 박성철 변호사는 대법원의 이 사건 선고일 전날과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직후 “인권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대상자의 위치와 이동 경로, 상태를 24시간 파악해 재범을 억제할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감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전자발찌를 찬 범인이 연달아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두 번째 범죄는 막을 수 있었으나, 시스템은 고장 나 있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박 변호사는 이어 “재판에서 겹겹이 쌓인 국가의 잘못을 밝혔다. 교도소 석방 통보문부터 틀렸다. 징역 6월형을 받은 절도범으로 기재했다. 경찰서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단순 자료보관 대상자로 분류됐다. 보호관찰도 소홀했다.”면서, “2012년 사건 당시 네 살이던 피해자의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라고 적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