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식당 임차인이 식당을 양도한 뒤 이를 임대인인 식당점포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임대차보증금을 받아 임의로 처분했더라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17도3829)
A씨는 2013년 4월 1일부터 2014년 4월 1일까지 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 100만 원으로 건물 1층 점포를 임차해 식당을 운영하다가 부동산중개업자 B씨에게 식당의 양도를 의뢰했고, B씨는 순창군 임야와 식당의 교환을 제안했다.
A씨는 2013년 11~12월 사이에 B씨를 통해 C씨에게 식당을 양도(식당에 관한 임차보증금반환채권 양도 포함)했다. C씨는 B씨를 통해 A씨에게 양도대금 중 500만 원을 지급했다.
이후 A씨와 B씨는 식당과의 교환대상 토지를 다른 토지(안동시 토지)로 변경하기로 했다가, 안동시 토지와 순창군 토지의 시가 차이(안동시 토지의 시가가 순창군 토지 시가보다 낮음)로 인한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다.
문제는 교환계약과 관련해 분쟁이 지속되던 중 A씨는 2014년 3월 31일 식당 점포 임대인인 건물주로부터 임차보증금(임차보증금 2천만 원 중 연체차임 등을 공제한 1천146만 원)을 반환받아 사용하면서 불거졌다.
A씨가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C씨에게 양도했음에도 임대인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지 않고 임대인으로부터 남아 있던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아 보관하던 중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행위에 대해 검찰은 A씨를 횡령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인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그 금전은 채권양도인이 아니라 채권양수인이 소유하고, 나아가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해 채권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본 종전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9. 4. 15. 선고 97도666 전원합의체 판결 등)를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였다.
1심과 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A씨가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B씨에게 양도하고 이를 보관한다는 사정을 인식한 상태에서 고의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아 소비해 횡령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보고 유죄로 판단하면서 벌금 3백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전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하면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니라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하고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해 양도채권의 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따라서 채권양도인이 양도한 채권을 추심해 수령한 금전에 관해 채권양수인을 위해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채권양도인이 금전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례의 방향성에 관해 “최근 10여 년 동안 판례의 흐름을 보면, 대법원은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닌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배임죄나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해 왔다."면서, "부동산 임차권의 양도, 일반 동산의 매매, 권리이전에 등기·등록을 필요로 하는 동산의 매매, 주권 발행 전 주식의 양도, 수분양권의 매매 등의 사안에서, 양도인이 양도한 재산권에 관한 권리이전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재산권 자체 또는 재산권을 행사해 취득한 결과물을 제3자에게 처분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의 흐름은 배임죄에 관해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태도를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무의 이행이 타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행위를 형사법상 배신적 행위로 확대해석해 배임죄나 횡령죄의 성립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위와 같은 흐름에 배치될 수 있다."면서, "종전 판례는 최근 판례의 흐름이나 다양한 사안에서 확립된 선례의 입장과 실질적으로 상충되고, 이로 말미암아 해결하기 어려운 형사처벌의 불균형을 야기하므로, 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설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이 사건에 대한 구체적 판단으로 들어와 "피고인이 피해자와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에 관한 채권양도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인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임대인으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남아 있던 임대차보증금을 수령했더라도, 임대차보증금으로 받은 금전의 소유권은 피고인에게 귀속할 뿐이고 피해자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 나아가 채권양도계약을 체결한 피고인과 피해자는 통상의 권리이전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에 있을 뿐이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한 보관자 지위가 인정될 수 있는 신임관계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면서, "결국 이 사건 공소사실은 횡령죄의 구성요건으로서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가 인정되지 않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므로, 원심판단에는 채권양도에서 횡령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에 대해, 조재연·민유숙·이동원·노태악 대법관은 “종전 판례의 법리는 권리의 귀속자인 채권양수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여전히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면서, "채권양도인이 이미 채권양수인에게 귀속된 재산을 임의로 처분했다면 형사법의 개입이 정당화될 정도의 배신적 행위로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원칙적으로 그 금전은 채권양수인을 위해 수령한 것으로서 채권양수인의 소유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면서, “채권양도인은 실질적으로 채권양수인의 재산 보호 내지 관리를 대행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채권양도인이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수령한 금전에 관해 채권양수인을 위해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 횡령죄에 관한 선례들과 비교해 배신성이 보다 가벼운 사안에서는 처벌이 긍정되고 배신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사안에서는 처벌이 부정됨으로써 형사처벌의 공백과 불균형이 발생한다.”면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선수 대법관은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으로부터 채권양도의 원인이 된 계약에 따른 채권양도의 대가를 확정적으로 지급받지 못한 경우와 같이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충족시켜 완전한 권리를 이전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형사법적으로 ‘정당한 항변사유’가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므로 이 사건에서는 종래 판례가 적용되지 아니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별개의견을 밝혔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그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니라면 그러한 계약의 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최근 횡령·배임죄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반영해, 채권양도 영역에서도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태도를 강화하는 입장을 취한 판결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수령한 금전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1999년 4월 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은 모두 변경됐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