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의사나 의료법인은 ‘상인’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은 상사채권이 아닌 일반 민사채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최초로 나왔다.
앞서 대법원은 같은 전문직업인인 변호사와 법무사에 대해서도 법령에 의해 영리추구 활동이 상당한 정도로 제한되고 직무에 관해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므로 효율적인 방법으로 최대한의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허용되는 상인의 영업활동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 ‘상인적 방법에 의해 영업을 하는 자’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의제상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06마334, 2007마996 결정
대법원 제3부(재판장 안철상 대법관, 주심 이흥구 대법관, 김재형·노정희 대법관)는 의사인 A씨와 B씨가 C의료법인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들의 수당 등 채권이 상사채권’으로 본 원심판결을 파기·자판(파기환송하지 않고 스스로 판결)했다.(대법원 2022다200249)
C의료법인이 설림한 병원 소속 의사로 근무하다가 2018년 2월 퇴직한 산부인과 의사A씨와 신경외과 의사 B씨는 C의료법인에 대해 시간외 근로수당과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퇴직금 차액 및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C의료법인이 변론에 나서지 않아 무변론 판결로 A씨와 B씨의 청구가 인용됐다.
C의료법인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청구는 기각되고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과 퇴직금 차액 청구만 일부 인용됐다.
2심 재판부는 지연손해금율은 퇴직 후 15일부터 원심판결의 선고일(2021. 12. 8.)까지는 상법이 정한 연 6%로, 원심판결 선고 다음날부터 변제완료일까지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 20%로 판단했다.
<근로기준법>은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에 대한 지연손해금에 관해 ‘사업주가 법원 또는 노동위원회에서 다투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는 퇴직 후 15일부터 변제완료일까지 근기법상 지연이율인 20%를, 사업주가 다투는 것이 적절한 경우는 퇴직 후 15일부터 다투는 것이 적절한 시점까지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지연이율(민법 또는 상법 등 기타), 다투는 것이 적절한 시점의 다음날부터 변제완료일까지는 근로기준법상 지연이율인 20%를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이 상사채권인지 일반 민사채권인지 여부였다.
대법원 제3부는 “의사의 영리추구 활동을 제한하고 그 직무에 관해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며 의료행위를 보호하는 <의료법>의 여러 규정에 비추어 보면, 개별 사안에 따라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활용해 진료 등을 행하는 의사의 활동은 간이·신속하고 외관을 중시하는 정형적인 영업활동, 자유로운 광고·선전을 통한 영업의 활성화 도모, 인적·물적 영업 기반의 자유로운 확충을 통한 최대한의 효율적인 영리 추구 허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상인의 영업활동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면서, “의사의 의료행위와 관련해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해 상인의 영업활동 및 그로 인한 형성된 법률관계와 동일하게 상법을 적용해야 할 특별한 사회경제적 필요 내지 요청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의료법>의 여러 규정과 제반 사정을 참작하면 의사나 의료기관을 <상법> 제4조 또는 제5조 제1항이 규정하는 상인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은 상사채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면서, “그런데도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수당 등 채권에 상법상 지연손해금 이율을 적용한 원심의 판단에는 상사채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 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지연손해금에 관한 피고 패소 부분을 일부 파기하되, 이 부분은 대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므로 민사소송법 제437조에 따라 자판하기로 한다.”면서, “피고는 원고 A에게 112,485,212원, 원고 B에게 57,953,322원 및 각 이에 대해 원고들 퇴직일로부터 14일이 경과한 다음 날인 2018. 3. 15.부터 피고가 그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를 다투는 것이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원심판결 선고일인 2021. 12. 8. 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다. 소송총비용 중 50%는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의사와 의료법인을 상인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의 본질은 상사채권이 아닌 일반 민사채권이라는 점을 최초로 설시했다.”고 그 의의를 전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