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회의 자리에서 상급자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며 질문을 받게 되자 대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듯한 언급을 했더라도 이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민유숙 대법관, 주심 천대엽 대법관, 조재연·이동원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1도17744)
이 사건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피해자인 B씨로부터 작업장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아 이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직원 5명이 있는 자리에서 ‘B씨는 작업장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애초에 나한테 보고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발언은 사회통념상 피해자가 통상적인 업무처리 방식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지 않아서 업무처리가 미숙하고 그로 인해 결국 작업장에 피해를 끼쳤다거나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피고인의 이러한 발언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하는 명예훼손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A씨를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6백만 원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2부는 먼저 “<형법> 제307조의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주관적 요소로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를 가지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데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할 것이 요구된다.”면서,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에 따르더라도 피고인이 발언하게 된 경위는 상급자로부터 경과보고를 요구받으면서 과태료 처분에 관한 책임을 추궁받자 이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관련한 언급을 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적시했다.
이어 “그 발설의 내용과 경위와 동기·상황에 비추어 명예훼손의 고의를 가지고 발언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책임에 대한 변명을 겸해 단순한 확인 취지의 답변을 소극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게 된 상황이 억울하다’는 취지의 주관적 심경이나 감정을 표출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이와 같은 대답을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회의 자리에서 상급자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며 질문을 받게 되자 이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듯한 사실을 발설하게 된 것이라면, 그 발설 내용과 경위․동기 및 상황 등에 비추어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고, 또한 질문에 대하여 단순한 확인 취지의 답변을 소극적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면 이를 명예훼손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라고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시했다.
이에 “원심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에는 명예훼손죄의 고의와 사실의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단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