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공인중개사가 부동산매수인의 동의 없이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뒤 부동산매도인의 요청으로 녹음파일을 넘겨줬어도 위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방법원 민사51단독 지창구 판사는 부동산매수인 A씨가 공인중개사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수원지방법원 2021가소346049)
A씨는 2020년 11월 21일 B씨의 중개로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C씨와 D씨 공동소유의 아파트를 매수했다.
이후 A씨는 2021년 3월 4일 B씨의 중개사무소에서 공동 매수인인 E씨와 함께 B씨와 해당 아파트 하자보수청구와 중개보수 지급에 관한 대화를 나눴는데, B씨는 A씨와 E씨의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했다.
A씨는 같은 달 13일 수원지방법원에 C씨를 상대로 해당 아파트의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소(2021가소316055)를 제기했다.
그러자 B씨는 그해 4월 19일 C씨에게 “2021년 2월 14일 매수인이 주신 하자는 부동산 관례상 매도인에게 청구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이 있었고 소수의 확실한 비용이 드는 하자는 비용이 얼마 나오지 않는 선이라 저희 부동산이 대신 처리하겠다고 매도인에게 말씀드리고 책임을 졌습니다.” 등의 내용으로 ‘아파트의 매매와 전세 및 하자 소송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우편을 보냈다.
이에 아파트 공동 매도인인 D씨는 B씨에게 “아파트 손해배상 소송으로 내용증명 보낸 부분에 대해 매수자가 부동산과 하자 관련 합의사항이 전혀 없다고 답변해 입증자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입증자료를 위한 녹취록을 요청했고, B씨는 녹음 파일을 교부했다. 이후 C씨는 녹음 파일로 녹취서를 작성해 수원지방법원 2021가소316055 소송에 증거로 제출했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비밀리에 녹음한 후 제3자에게 녹음 파일을 유포함으로써 음성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으므로, 손해배상으로 500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지창구 판사는 먼저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에 의하면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으나 자신과의 대화나 자신에 대한 발화의 녹음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법규범은 우리 법에 존재하지 아니한다.”면서, “무단녹음의 금지를 헌법상 음성권으로부터 도출한다고 해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할당된 권리영역이 있음을 뜻하지 아니한다.”고 설시했다.
이어 “이번 사건 대화의 내용은 피고의 입장에서는 공인중개사로서 하는 중개업무와 원고 입장에서는 아파트의 매수와 각 관련된 것인바, 내밀영역과 비밀영역, 사적 영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사회적 영역에 속하는 점, 피고로서는 추후 아파트의 하자보수나 원고의 피고에 대한 중개보수 지급과 관련된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대화를 녹음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D씨는 관련소송에서 증거 제출이 필요해 피고에게 녹음 파일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피고가 D씨에게 녹음 파일을 교부하게 된 점을 종합하면, 피고가 이 사건 녹음을 한 것이나 D씨에게 녹음 파일을 교부한 것이 <민법> 제750조에 규정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지창구 판사는 B씨가 관련 소송 사실을 알고 C씨를 돕기 위해 녹음했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 B씨가 녹음한 시점은 관련소송이 제기되기 전인 2021년 3월 4일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