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식사를 접대하면서 상대방과의 대화를 몰래 촬영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행위는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1997년 일명 ‘초원복집’사건 대법원 판례가 25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4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의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 2017도18272)
전남 광양시의 한 운송기업 부사장인 A씨와 관리팀장 B씨는 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인 C씨가 회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자 C씨에게 향응을 제공하며 부적절한 요구 등을 하는 장면을 녹음·녹화하기 위해 2015년 1월부터 2월까지 식당 주인 몰래 음식점에 녹음·녹화 장치를 설치하고 회수한 사실에 대해 주거침입죄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의 쟁점은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음식점에 들어갔더라도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였다.
1심은 “피고인들이 음식점 영업주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 목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간 것은 영업주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며 주거침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인들은 음식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음식점에 들어갔고, 영업주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 목적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들의 출입행위가 영업주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기 어려워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1인의 다수의견으로 "피고인들이 이 사건 각 음식점의 영업주로부터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들어간 이상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영업주가 피고인들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으면 출입을 승낙하 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되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서, "원심판단에는 주거침입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으므로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11인의 다수 대법관들은 “주거침입죄에서 침입에 해당하는지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이에 해당하는지는 주거 등의 형태와 용도·성질, 외부인에 대한 출입의 통제·관리 방식과 상태, 행위자의 출입 경위와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거주자의 승낙을 받아 주거에 들어갔으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는지에 따라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그러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갔다면 설령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어도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돼도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음으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별개의견을 낸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은 다수의견과 근거는 다르나 이 사건에 관한 판단의 결론은 같았다.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은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모습’이라는 의미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면서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는지에 따라 침입 여부를 판단해도 거주자 의사에 반했는지를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삼아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영업주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음식점에 들어갔으므로 기본적으로 영업주의 의사에 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수 없어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1997년 3월 28일 일명 ‘초원복집’ 사건에 대한 판례가 변경됐다. 당시 대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더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출입한 것은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며 주거침입죄의 성립을 인정했다.(대법원 95도2674)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를 1주일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시의 한 복어요리 전문점인 ‘초원복국’에서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 등 정부 주요 기관장들이 모여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자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하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당시 이 내용은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이 민자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 등과 공모해 식당에 도청장치를 몰래 숨겨 녹음한 것을 언론에 폭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