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성폭력처벌법 등 성범죄 처벌법령과 청소년성보호법 등 수사·형 집행 단계에서 형사사법 작용의 근거 법규에 적시된 ‘성적 수치심’ 등 부적절한 용어를 가해 행위 위주의 성 중립적 법률용어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법무부 전문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다.
주관적이고 도덕적 개념인 ‘수치심’이 범죄 성립과 형사책임의 판단기준으로 작용해 법적 판단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해한다는 불필요한 오해가 유발된다는 지적이다.
법원 판례는 ‘성적 수치심’의 판단 기준이 해당 피해자의 주관적 개념이 아닌, 일반인 관점의 개념으로 판시해 왔으나, 수사 실무에서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 여부를 질문하고 이를 범죄 성립 여부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위원장 변영주)는 24일 이 같은 내용의 ‘성범죄 처벌 법령상 성적 수치심 등 용어 개정’을 여덟 번째 권고안으로 발표했다.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성적 수치심’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공포·분노·비현실감·죄책감·무기력·수치심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피해 감정을 소외시키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성 차별적 용어”라고 지적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수치심'을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로 정의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또 “성범죄 처벌 법률 또는 판결문에 ‘성적 수치심’이 적시돼 형사책임의 판단 기준으로 작용함에 따라 피해자의 주관이 범죄 성립 여부를 결정한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성범죄 처벌 법령상의 법률용어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형법>과 <성폭력처벌법> 등 현행 성범죄 처벌 법률을 적용하면서 통상 성기 삽입 이외의 성적 행위에 대한 법적 개념으로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가 적시돼 있다. 특히, 비접촉 성범죄인 디지털 성범죄에서 ‘성적 수치심’은 범죄 성립 요건인 핵심 구성요건으로 법문에 직접 명시돼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는 ‘카메라나 그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 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 <청소년성보호법>, <아동복지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 등에서도 ‘성적 수치심’이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성이 아닌 ‘성을 매개로 한 폭력’ 자체에 초점을 맞춘 중립적인 개념이 설정될 필요가 있다.”면서, “<성폭력처벌법> 제13조 내지 제14조의 3 ‘성적 수치심’ 등의 용어를 삭제하고, 침해되는 법익과 가해 행위 중심의 법률 용어인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 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또 법무부 소관 법령인 <인권보호수사규칙> 제56조, <형집행법 시행규칙> 제214조에 규정된 ‘성적 수치심’ 용어를 삭제하고, 성 중립적 법률용어인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 등의 문구로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지난해 1월 28일자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 5차 권고안 내용과 같이 현재 다수 법률에 사용되고 있는 ‘성희롱’이라는 용어는 성범죄를 희화화하고 범죄성을 희석할 우려가 높아 부적절하므로 ‘성적 괴롭힘’으로 대체할 것을 재차 권고했다.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이번 권고에 따라 법령이 개정되면, 그 기대효과로 ▶ ‘수치심’에서 비롯된 고정관념과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2차 가해로부터 성범죄 피해자 보호, ▶ 성범죄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 증진과 이를 통한 실질적 범죄피해 회복 등 치료적 사법 실현, ▶ 성범죄에 대한 형사책임의 판단기준이 가해행위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법률적 개념으로 명확하게 정립 및 형사사법에 대한 신뢰 회복을 들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 관계자는 이번 권고에 대해 “법무부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법규와 내부 규율 전반에 걸쳐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편견을 유발하거나 성차별적 개념이 없는지 세밀하게 점검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