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조합장지위 부존재확인소송에서 당사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사항을 판결한 것은 변론주의 원칙을 위반한 잘못이 있다며 항소심 판결을 파기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변론주의 원칙이란 사실과 증거의 수집과 제출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고, 당사자가 수집해 변론에서 제출한 소송자료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민사소송법상의 대원칙이다. 즉, 판사가 알고 있는 사정이라도 당사자가 그에 관한 사실을 주장하고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고려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사소송법 상 변론주의의 직접 근거조문은 없지만,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라고 처분권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정희 대법관, 주심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원 노모씨가 자산구역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조합장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의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1다291934)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에 따라 설립된 자산구역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조합장인 이모씨는 2016년 7월 17일 조합장으로 취임한 이래 2018년 7월 17일과 2020년 7월 17일 각 중임돼 조합장 직무를 수행해 왔다. 이 조합장은 2019년 12월 26일 이 사건 정비구역 내 주소로 전입신고를 했다.
<도시정비법> 제41조 1항은 ‘조합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요건을 갖춘 조합장 1명과 이사, 감사를 임원으로 둔다. 이 경우 조합장은 선임일부터 제74조 1항에 따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을 때까지는 해당 정비구역에서 거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조항 제1호는 ‘정비구역에서 거주하는 자로서 선임일 직전 3년 동안 정비구역 내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일 것’을, 제2호는 ‘정비구역에 위치한 건축물 또는 토지(재건축사업의 경우에는 건축물과 그 부속토지를 말한다)를 5년 이상 소유하고 있을 것’을 들고 있다.
이처럼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 전문 제1호, 제2호는 조합의 임원으로 선임되기 위한 자격요건을 같은 항 후문은 조합의 임원으로 선임된 이후 자격 유지 요건을 정하고 있다.
노씨는 조합장에 선출된 이씨가 정비구역 내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아 조합장 지위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제1민사부는 이 조합장이 정비구역 내에 살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인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민사부는 이 조합장이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 전문 제1호, 제2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했으므로 같은 법 제43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피고의 조합장에서 당연 퇴임해 피고의 조합장 지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제3부는 “법원은 변론주의 원칙상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서만 판단해야 하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사항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못한다.”면서,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은 조합의 임원 선임 자격 요건과 자격 유지 요건을 전문과 후문으로 구분해 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두 요건 중 하나만 주장할 때는 변론주의 원칙상 법원은 그 주장에 대해서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제3부는 이어 “기록에 따르면, 원고는 원심에 이르기까지 ‘이씨가 조합장으로 선임된 이후 정비구역 내에서 실제로 거주하지 않아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 후문에 정해진 자격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을 했고, ‘이씨가 조합장으로 선임되기 전에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 전문 제1호, 제2호에 정해진 선임 자격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데도 원심은 ‘이씨가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 전문 제1호, 제2호에 정해진 선임 자격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해 피고의 조합장 지위에 있지 않다’고 해 원고가 주장하지도 않은 사항에 관해서 판단한 것은 변론주의 원칙을 위반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는 정당하다.”고 설시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원고의 청구를 반드시 기각하라는 취지는 아니며, 파기환송심에서 원고가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주장을 변경하면 심리 결과에 따라 다시 청구 인용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이 소송의 원고인 노모 조합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는 법무법인 김해앤세계의 변신규·허정용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했는데, 상고심인 대법원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