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일보] 독서실 열람실 내 남녀 좌석을 구분해 배열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교습정지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한 전라북도 조례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안철상 대법관, 주심 이흥구 대법관, 김재형·노정희 대법관)는 최근 독서실 운영업체인 (주)잇올이 전라북도 전주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제기한 교습정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19두59851)
(주)잇올은 2017년 10월 12일 전주시 덕진구에서 학원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따른 ‘학습장소로 제공되는 학원인 시설’에 해당하는 독서실을 등록해 운영했다. (주)잇올은 당시 교육청에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 배열된 열람실 배치도를 제출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제8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는 제3조의3 제2호에서 학원의 열람실 시설기준으로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제11조 제1호와 시행규칙 제15조 제1항에서는 독서실의 남녀 혼석에 관한 사항을 위반한 경우 1차 위반 시 10일 이상의 교습정지처분, 2차 위반 시 등록말소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교육지원청은 2017년 12월 1일 이 사건 독서실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해 '열람실의 남녀별 좌석 구분 배열이 준수되지 않고, 배치도상 남성 좌석으로 지정된 곳을 여성이 이용하거나 여성 좌석으로 지정된 곳을 남성이 이용해 남녀 이용자가 뒤섞여 있는 것'을 적발하고, 학원법 제17조와 이 사건 조례 조항에 따라 10일간 교습정지를 명하는 처분을 했다.
이에 (주)잇올은 전주지방법원에 교습정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조례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독서실 운영자와 이용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해 무효인지 여부다.
1심인 전주지방법원 제2행정부는 학원법에 없는 남녀 혼석금지를 규정한 것은 위임 입법의 한계를 벗어났다며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면서 교습정지 처분을 취소했다. 그러나 2심인 광주고등법원 전주제1행정부는 좌석 구분이 이성과 불필요한 접촉 등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1심 판결을 뒤집어 원고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제3부는 “이 사건 조례 조항은 입법 경위와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독서실 내에서 이성과 불필요한 접촉을 차단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성범죄를 예방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한다.”면서 “그러나 열람실의 남녀 좌석을 구분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습효과를 높인다는 것은 독서실 운영자와 이용자의 자율이 보장돼야 하는 사적 영역에 지방자치단체가 지나치게 후견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남녀가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학습할 것인지, 어느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학습할 것인지 등 사적 공간에서 학습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타인의 법익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이용자 각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미성년 학생이라도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해 우선 결정할 것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다.”라고 적시했다.
아울러 “남녀 혼석을 금지해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을 보더라도 이는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그 장소의 용도나 이용 목적과 상관없이 성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불합리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므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의견을 달리해 면학분위기 조성이나 성범죄 예방이라는 목적의 정당성을 수긍한다고 해도 같은 열람실에서 남녀 좌석을 구별하는 것이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라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 등 남녀 혼석이 허용되는 다른 형태의 사적인 학습공간이 많은 상황에서 학원법의 적용을 받는 독서실만을 대상으로 남녀 혼석을 금지한다고 해 사적 학습공간에서 이성간의 접촉을 차단하는 효과가 생긴다고 볼 수도 없고 남녀 혼석 때문에 학습분위기가 저해되거나 성범죄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또 남녀 혼석이 성범죄 발생가능성을 반드시 높이는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공간 구분이 아닌 좌석 구분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실증적인 자료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해당 조례 조항은 그 적용대상이 되는 독서실 운영자에게 남녀 좌석을 구분 배열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별도의 경고 조치 없이 곧바로 10일 이상의 교습정지 처분을 하도록 하면서도(2회 위반의 경우에는 등록말소의 대상에도 해당된다), 독서실의 운영 시간이나 열람실의 구조, 주된 이용자의 성별과 연령, 관리감독 상황 등 개별적·구체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서실의 남녀 좌석 구분 배열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면학분위기 조성이나 성범죄 예방이라는 효과는 불확실하거나 미미하다고 볼 수밖에 없어 해당 조례는 침해 최소성과 법익 균형성도 충족하지 못한다.”면서, “해당 조례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독서실 이용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내지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끝으로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조례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고 이에 근거한 이 사건 처분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사적인 자율영역에 대한 공권력 개입의 헌법적 한계,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한계로서 과잉금지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고 판시했다.
시민을 위한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국법률일보' 김명훈 기자 lawfact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