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팩트 손견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28일(금)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도입안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와 국제인권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에 관한 법률안’을 28일 입법예고했다. 이 법률안은 대체복무 신청자에 대한 심사기관을 국방부 산하에 설치하고, 대체복무자를 현역군복무기간의 2배인 36개월 간 합숙 형태로 교정시설에서 복무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인권위는 이날 성명에서 먼저 “그동안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대체복무신청자에 대한 공정한 심사를 위해 군과 독립된 심사기관을 마련하고, 현역 군복무기간의 최대 1.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사회의 평화와 안녕, 질서유지 및 인간보호를 위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복무를 하도록 여러 차례 권고해왔다.”면서, “또한 최근 주한 유럽연합 대표부 대사는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국방부 실무추진단의 대체복무제 도입안이 국제적 인권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데 대한 우려를 전하면서, 해당 제도안의 대체복무가 징벌적이고 차별적이며 극도로 제한적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권고에 부합하지 않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고 짚었다.
이어 “국방부는 제도의 악용 가능성 방지, 현역 군복무자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제도를 설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국방부로서는 국토방위와 안보에 대한 우려 등을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미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바와 같이 “병역기피 풍조를 방지하는 것은 양심을 가장한 병역기피자들을 정확하게 가려내어 처벌함과 동시에 군복무여건을 개선하고 병역 내 악습과 부조리를 철폐하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달성하여야 할 일”이며,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특히 현재 현역 군복무 외에 시행 중인 다른 유형의 복무자들은 출퇴근 근무를 하거나, 본인의 자격이나 기술 등을 기반으로 향후 자신의 진로와 연계시킬 수 있거나, 현역 군복무자에 비해 높은 수준의 보수를 받는 등 복무 여건에 상응하는 복무기간이 고려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국방부의 법률안은 현행 제도와 비교할 때, 복무 영역이나 기간 등 구체적인 복무내용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체복무제 도입은 국가구성원으로서 국방의 의무 이행과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조화시키고, 우리 사회 인권보장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라면서, “그동안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약 2만 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형사 처벌되었고, 이로 인해 당사자 및 가족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끝으로 “이와 같은 내용의 법률안이 그대로 제정된다면,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와 시민사회는 물론, 큰 기대를 가지고 주목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복무 영역과 기간 등 구체적 제도안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점, 심사기구를 국방부 산하에 설치할 경우 심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힘든 점 등 문제점을 개선하고 바람직한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방부 대체복무제 도입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법무법인 해마루 오재창·임재성 변호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5명의 전문가도 ‘정부의 징벌적인 대체복무안(案) 수정을 촉구한다.’는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발표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안에 대한 비판 입장을 발표하고, 정부안 수정을 촉구했다.
5인의 자문위원들은 먼저 “‘현역복무와의 형평성’과 ‘소수자 인권보호’를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졌지만, 정부안에는 결국 가장 징벌적인 요소만이 집약되어 있다.”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특히 36개월 복무기간에 대해, 국방부가 대체 복무 기간의 형평성을 언급하면서 최소 중위 1호봉 기본급과 관사가 지급되며 출퇴근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공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을 교도소에서 합숙 복무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 복무 기간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면서 “복무 여건이나 복무 강도가 현역병보다 무거운 상황에서 복무기간까지 현역병의 2배로 설정하게 된다면 ‘형평성’은 무너지고 대체복무제는 또 다른 징벌로 기능하게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국방부가 36개월 복무기간의 근거로 삼고 있는, 단 하나의 문항으로 진행된 자체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 복무는 소수자의 인권 문제로, 이를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는 없다.”면서, “편파적인 문항을 근거로 한 여론조사로 복무기간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팩트(LawFact) 손견정 기자 lawfact.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