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재판관으로서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헌법재판소를 떠납니다.
숨가쁘게 느껴질 만큼 많은 사건들과 씨름을 끝내면서 오늘 느끼는 감회는 특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년 전 재판관 취임할 때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헌법을 지키는 초석과 기둥을 굳건하게 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문을 더욱 활짝 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국민의 세미한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다, 헌법재판이 소수자를 배려하고 사회적 약자의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회고해보면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입지가 미약했던 진보정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고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대통령탄핵 사건의 변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팽팽한 긴장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밖에 다른 사건들에서도 저의 능력의 한계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봄가을엔 고궁을 산책하고 역사를 배우면서 계절의 정취를 만끽했습니다. 해마다 벚꽃이 활짝 핀 남산을 달리던 추억도 새롭습니다. 우이령길 걷기에 동참하며 친목과 우의를 다지던 시간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편, 오늘 이 자리는 제가 41년 전 사법연수생으로 시작한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짐을 꾸리면서 정리해놓은 앨범을 펼쳐보았습니다. 기억에서 멀어졌던 반가운 얼굴들도 보입니다.
그동안 함께 근무한 분들의 협력과 조언은 저에게 힘을 주었으며, 비판과 질책은 저를 더 나은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주어질 나날들을 새롭게 설계해보며 가슴 설레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30년의 연륜이 쌓이면서 이제 헌법의 최종적 해석자, 수호자로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소외로 인해 그늘진 곳이 있습니다.
헌법의 따뜻한 기운이 어둡고 그늘진 곳에도 고루 퍼져나가 이 나라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저의 퇴임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8년 9월 19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 이 수